안성은 서울 톨게이트에서 차로 30분이면 도착한다. 그야말로 지척이다. 그러나 안성엔 도시의 시멘트 냄새 대신 고려시절부터 명맥을 이어온 유구한 역사와 왕성한 경제활동에서 파생된 장인의 전통이 배어있다. 예부터 자연 재해가 없고 각종 물산이 풍부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안성.편안한 곳이란 뜻이다. 요즘 개념으론 '웰빙의 도시'쯤 될 듯싶다. 안성평야에서 자라난 농산물과 안성맞춤이란 말을 탄생시킨 놋그릇 등 각종 공예품이 생산되던 이곳에는 항상 큰 장이 섰다. 사람들이 모였고 놀거리와 볼거리,먹거리 등이 곁들여졌다. 그래서 남사당 놀이는 이곳의 대표적 연희로 자리잡았다.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남사당패가 이곳에 있었고 겨울이면 전국의 남사당패가 모두 모여 훈련을 했다. 남사당패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안성은 최초의 시립 남사당패를 운영하고 있다. 안성 남사당패의 이야기는 조선조 흥선대원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암덕(바위덕이)이란 소녀가 있었다. 바위덕이는 병든 아버지에 의해 다섯살에 남사당패에 넘겨진다. 그리고 15세 때 여성으로서는 처음 남자들로만 이뤄진 남사당패의 우두머리 꼭두쇠가 된다. 당시는 경복궁 중건이 한창이었다. 대원군은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남사당패들을 서울로 불렀다. 대원군은 이 자리에서 바위덕이의 뛰어난 재주를 칭찬하며 옥관자를 내린다. 정3품 당상관 이상에게만 허용되던 물건이다. 이후로 전국의 남사당패는 바위덕이가 속한 남사당패의 깃발을 보면 스스로 기수를 숙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재인은 박명이라던가. 바위덕이는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폐병으로 세상을 달리한다. 바위덕이는 그렇게 승화했지만 그녀의 예술혼은 지금도 안성시 남사당패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동그랗게 원을 만들고,다시 일렬로 줄서기를 반복하는 재주꾼 사당패들.그들의 얼굴에 어린 웃음 속에는 희로애락이 모두 깃들어있고 보는 이들은 어느새 돌아가는 풍물놀이패 안으로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매주 토요일 저녁 안성 남사당 전수관(www.baudeogi.com)에서 열리는 상설공연에서는 이런 감동을 만끽할 수 있다. 안성에서는 복조리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3백년 전통의 복조리 생산지인 칠장리 박성수 이장(031-672-7949)에게 연락하면 복조리를 직접 만들어보고 선물까지 받아 갈 수 있다. 이밖에 천연염색,석고캐스팅,도자기공예 등 체험공방과 예술작품,자연이 어우러진 15만평의 너리굴 문화마을(031-675-2171)은 단체와 가족단위로 찾아볼 만하다. 글 안성=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 -------------------------------------------------------------- [ 여행수첩 ] 큰 장으로 유명했던 안성엔 뛰어난 먹거리가 많다. 안성한우는 육질이 부드럽다. 고유 브랜드인 "안성마춤" 한우를 내놓는 한우촌(031-673-5550) 등심 1인분 2만8천원. 신안CC 근처 고삼묵집(031-672-7026)의 도토리묵밥 역시 맛이 그만이다. 1인분 5천원이면 배가 그득해 진다. 서일농원(031-673-3171)에서는 국산 재료를 전통적 방법으로 가공해 만든 순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메뉴는 된장찌개와 청국장으로 15가지 장아찌와 함께 나온다. 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