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나라~교토] 일본속 한국문화자취 '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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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대사회의 무게중심은 아스카~나라~교토로 이어졌다.
일본 최초로 국가형태를 갖춘 야마토조정이 아스카를 근거로 삼았고,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이는 등 천왕중심의 중앙집권 체제를 공고히 한 80여년의 나라시대를 거쳐,교토로 천도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당시는 한반도에서 흘러들어간 대륙의 선진문화가 절대적 영향을 끼쳤던 때.
자연히 한국의 고대문화와 관련된 흔적이 이 지역에 산재해 있다.
일본속의 한국문화 탐방 1번지로서 이 지역이 꼽히는 이유다.
아스카는 나라에서 24㎞정도 떨어진 마을.
지형적으로 한국의 부여를 빼닮은 이곳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이룩한 문화의 단면을 엿볼수 있다.
널리 알려진 것이 다카마쓰고분.
1972년 발견 당시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분이다.
고분의 벽화에 관심이 쏠렸었다.
완벽한 형태로 발견된 벽화 속의 인물과 옷차림이 고구려 고분벽화 양식과 똑같았던 것.
고분의 주인이 고구려인일 것이란 추론을 가능케 했다.
고분은 출입할수 없고,인근의 아스카역사자료관에서 모사해 놓은 벽화를 확인할수 있다.
이시부타이고분도 마찬가지.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진 이 고분은 아스카왕조의 정치적 실권자였던 백제계의 소가노우마코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최초의 사찰인 아스카사는 또 어떤가.
고구려에서 건립자금을 보내왔으며,백제의 기와를 얹고 백제 성왕이 보낸 금동대불과 불사리를 안치했던 사찰이라고 한다.
나라 북부의 사찰 호류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금당과 오층목탑으로도 유명한 곳.
무엇보다 백제에서 건너온 백제관음상과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원본이 손실된 고구려 담징의 벽화가 눈에 띈다.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구세관음상도 마찬가지.
경내 배치 또한 백제 사찰의 그것과 닮았다고 한다.
나라시의 거대사찰 도다이지에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인 대불전에 모셔져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좌불상으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 고구려,백제,신라인들의 감독 아래 완성된 것이다.
이 지역 한국문화 탐방의 압권은 교토의 사찰 고류지에 보존되어 있는 일본의 국보 1호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
한국의 국보83호인 금동미륵반가상과 재질만이 다를 뿐 표정까지 그렇게 똑같을수가 없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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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답사회는(02-742-6746)는 6월2~6일 4박5일 일정으로 일본속의 한국문화 탐방여행을 떠난다.
나라와 아스카,교토와 오사카 등지를 돌며 고대 일본문화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한국문화의 자취를 확인한다.
1인당 87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