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취재수첩을 뒤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작년 3월께 취재메모를 들여다보니 북핵사태에다 초읽기에 들어가있던 미·이라크 전쟁,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까지 겹쳐 경제가 온통 초비상이었다. 당시 김진표 경제 부총리는 하루 한번꼴로 경제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가진 것으로 돼있다. 9월께 메모에는 한 과천 경제부처 관료의 푸념이 적혀 있다. "연초엔 북핵과 이라크 전쟁이 경기 회복을 지체시키더니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가 난리를 쳤고 다시 파업,그 후엔 태풍….정말 못해 먹겠네요."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 부총리를 정점으로 경제팀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어느 전문가의 멘트도 적혀 있다. 올해 상황도 작년 이맘 때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국제유가 상승세와 중국 쇼크,미 금리 인상설,주 5일제 시행을 앞둔 태풍전야 같은 노사관계 등 악재가 겹쳐 있는 형국이 1년 전 그대로다. 고위 관료들이 앞다퉈 '미심쩍은' 5%대 성장을 장담하는 모습까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경제 부총리의 위상 정도라고나 할까. 지난해 김진표 부총리는 말 그대로 '대화와 타협'이라는 도그마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1년을 여론과 청와대의 주문속에 끌려다녔다. 그러나 이헌재 부총리는 올 초 취임 후 '일사불란'한 경제팀 운용을 강조하더니 국회 탄핵안 통과 후엔 '이치(李治)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확실한 장악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총선후 이상조짐이 보이고 있다. "구조조정 일정에는 변함이 없다"는 이 부총리의 거듭된 확언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서는 기업 매각일정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는 회의가 극비리에 열렸고,이 부총리가 해외 투자자들에게 "앞으로도 성장 우선 경제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청와대쪽에선 "개혁없는 성장은 열걸음도 못나간다"는 엇박자가 흘러나온다. 정책당국자들은 지난해 우리 경제를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데 정부 내에서의 혼란스런 메시지가 '일조'했다는 사실을 유념하기 바란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