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비우량 채권시장이 살아나야..許昌秀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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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昌秀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한국경제의 양극화는 채권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그 여파는 채권시장의 동맥경화로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채권시장이 죽었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채권의 수급불균형이다.
수급불균형은 우량채권과 비우량채권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우량채권의 수요는 국민연금 한 기관만 해도 기보유채권의 만기도래분과 신규적립금을 합쳐 연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구나 기업연금(DC plan)이 제도화되면 우량채권의 수요는 더욱 빠른 속도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채의 공급은 공적자금의 손실분이 신규발행으로 전환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으나 적자재정 혹은 정부부채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으로 인해 앞으로도 크게 확대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우량회사채도 거래소 상장 12월말 결산기업의 유동성 보유분이 작년말 현재 20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순상환이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는 금리체계의 왜곡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상적으로 적정 금리수준은 실질경제성장률과 예상물가상승률의 합으로서 적어도 8%가 돼야 하나 현재의 금리수준은 내수침체를 감안하더라도 이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기간프리미엄과 위험프리미엄도 적정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기간프리미엄은 5년 만기 국고채와 10년 만기 국고채의 경우에 0.36%포인트에 불과하고 위험프리미엄도 3년 만기 국고채와 3년만기 AA- 등급 회사채의 경우에 0.49%포인트 정도에 머물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자금단기화 및 부동산 과열의 배경에 이와 같은 금리체계의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
비우량채권은 극단적인 위험회피로 인해 수요 자체가 실종된 상태이다.
투기등급채권은 아예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고 저급의 투자등급채권은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나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동 채권의 예비발행자는 대부분 중소기업으로서 이들의 자금수요는 은행 등의 대출이나 발행시장 담보부채권(프라이머리 CBO) 등에 의해 일부 흡수됐다.
중소기업 대출과 발행시장 담보부채권의 일시 만기도래 및 부실화의 배경에는 이와 같은 비우량채권시장의 미성숙이 자리 잡고 있다.
우량채권의 공급은 주택저당채권 확대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이 올해 이후 대규모로 만기 도래하는 충격을 완화할 목적으로 한국주택금융공사를 신설하고 주택저당채권을 발행할 예정으로 있는데 여기에 그치지 말고 이를 채권시장 질적 전환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채권은 세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첫째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보증하는 무위험채권으로서 국채의 대안이 될 수 있다.둘째 10년 이상의 장기채권일 수 있다.셋째 기존의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을 성공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대규모 발행이 가능하다.주택저당채권이 가장 활성화돼 있는 미국의 경우 이의 발행잔고는 5조1천억달러로서 국채 발행잔고 3조5천억달러를 크게 상회하면서 시장수요에 적절히 부응하고 있다.
투기등급채권의 부진은 아시아 전체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파이낸스아시아는 그 이유를 표준약관의 부재,부도발생시 법집행절차의 미흡,신용분석능력의 취약 등으로 요약하고 있다.
한국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중소기업 대출과 발행시장 담보부채권의 부실화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해결방안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그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투기등급채권 활성화의 가장 큰 장점은 부실기업을 시장기능에 의해 솎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걸러진 투기등급채권은 대체 투자수단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
투기등급채권을 포함한 비우량채권은 그 성격이 사실상 주식에 가까운데 미국의 경우 비우량채권을 대규모로 편입한 펀드가 최근의 경기회복과 함께 수익률 상위권을 차지한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주택저당채권과 투기등급채권의 활성화가 채권시장의 질적 성숙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cshur@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