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11시 서울대 LG경영관 301호 강의실.조동성 교수(경영학)의 "21세기 전략 패러다임"이란 강의를 듣는 30여명의 수강생 가운데는 예상밖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다.


조 회장이 이날 강의실을 찾은 것은 지난 3월 중순부터 이 곳에서 MBA 코스를 밟고 있는 29명의 대한항공 임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말하자면 학부모 입장에서 학교를 찾은 셈이다.


조 회장은 조동성 교수의 80분짜리 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했을 뿐 아니라 임원들과 함께 교내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하면서 "학생"들의 애로를 듣기도 하고 더욱 잘하라는 훈계도 했다.


대한항공이 서울대 경영대학원과 함께 '대한항공 임원 경영능력 향상 과정'이라는 이 코스를 개설한 것은 지난해.이미 30명의 임원들이 이 과정을 마쳤고 이번이 두 번째다.


대한항공의 임원은 모두 93명.조 회장이 전체의 3분의 1에 가까운 임원들을 현업에서 빼내 4개월간 '한가하게' 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4달간 힘든 과정을 마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바뀌겠습니까.


하지만 서로 토론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갖춰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항공 임원들은 사실 토론하고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능력이 다소 떨어집니다."


조 회장은 "항공업이 매우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기계분야 임원은 마케팅을 잘 모르고 마케팅 관련 업무를 하는 임원은 기계분야를 잘 모른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부서간 장벽을 없애고 사고방식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백 투 스쿨(back to school) 경영'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조 회장은 지난 97년 본사를 서소문에서 김포로 옮긴 것도 전문적인 분야에 능통한 임직원들간에 토론하고 협조하는 문화를 갖추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본사에 근무하면 마치 특혜를 받는 것처럼 생각됐지만 지금은 김포에서 어울려 일하면서 이런 인식은 거의 사라졌다는 판단이다.


조 회장은 식사 시간 동안 여러 차례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9명이나 되는 임원들을 4개월 동안 업무에서 제외시키고 대신 MBA 과정에만 몰두하도록 하면서 반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회사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건 대한항공의 시스템이 문제라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아무 일 없이 돌아가는 것은 그만큼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졌다는 것이지요."


조 회장은 오히려 이들이 현업에 복귀하게 되면 회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조 회장의 '욕심'이 큰 탓에 임원들은 죽을 맛이다.


16주간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스파르타식 MBA 코스에 연일 녹초다.


"처음에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과제에 스트레스까지 겹쳐 병원에 입원까지 했을 정도니까요."(홍보실 김광희 상무)


"리포트와 시험이 너무 많아 집 근처에 독서실을 끊어 놓고 공부하는 임원도 여럿 됩니다."(허신열 교육지원팀장)


한 달 반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공부가 손에 잡힐 정도가 됐다며 안도의 한 숨을 쉬는 임원들이 대부분이다.


모든 과정이 끝나는 7월 초에 29명의 임원들은 조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별 과제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예정이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