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종신고용 부담이 없으며 임금이 싼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또 많이 쓰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連合:렌고)를 찾은 기자에게 이 말을 한 사람은 다름아닌 야마구치 도모루 노동조건국장.


그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근로자를 많이 뽑아달라는 게 렌고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규직 임금의 70% 정도를 받는 비정규직 사원들과 정규 직원들 간에 임금 갈등도 거의 없다고 말하는 그는 "노조의 기본 철학과는 맞지 않지만…"이라며 현실의 변화를 수용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중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나라는 네덜란드.


여성 근로자의 70% 이상이 파트타이머일 정도로 시간제 근로가 발달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비정규직의 다양화가 오히려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된다며 노조가 앞장서서 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노총(FNV)의 에릭 펜텡가 정책자문관은 "파트타임은 자연스럽게 근로시간을 줄이기 때문에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 창출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며 전폭 지원의 뜻을 분명히 했다.


시장원리에 따라 채용과 해고가 결정되는 미국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에서는 조립라인이나 데이터 입력 같은 단순 직종뿐만 아니라 고숙련 업종으로까지 비정규직 고용이 확산되고 있다.


엔지니어 생명공학자 변호사 회계사 등 지식산업 분야까지 임시직을 쓰는 회사가 늘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4월부터 지금까지 늘어난 서비스 분야 임시직은 21만2천명.


이는 같은 기간 새로 창출된 전체 일자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뉴욕 연방은행 관계자는 "미국 고용시장의 큰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임시직 고용 증가"라고 분석했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는 독일 금속노조는 지난 2월 '비용절감을 통한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합의하는 등 시대가 요구하는 고용구조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로 홍역을 치른 스페인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유도하는 대신 정규직의 퇴직금을 전폭적으로 삭감하는 등 노사 합의를 이뤄냈다.


국내에서 비정규직 보호문제가 큰 논란을 빚고 있는 것과 달리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처럼 고용 형태가 더욱 다양화되고 노동시장 유연성이 강화되는 현상이 오히려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동ㆍ중유럽권 10개 국가가 최근 EU(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그동안 막강한 파워를 자랑해온 서유럽 노동조합들도 '고용 우선' 전략으로 돌아서는 등 기존 노사관계에도 일대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암스테르담=윤기설 노동전문ㆍ뉴욕=고광철 특파원ㆍ도쿄=정구학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