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다. 비행장에 점령군이 버리고 간 수송기 몇 대가 남아 있었다. 인근 주민들은 이 비행기의 껍데기를 뜯어내 프레스로 눌러 세숫대야를 만들었다. 비행기 속에 들어 있는 낙하산은 웨딩드레스를 만드는데 썼다. 비행기를 운송수단으로 활용할 기술을 가지지 못한 주민들이 이처럼 황당무개한 짓을 한 것이다. 이것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바로 한국의 여의도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지난주 옛 소련에 속하던 한 국가에서 한국의 중소 철강업체에 색다른 제안서를 보내왔다. 소련에서 사용하던 대규모 로켓을 해체해 원자재로 팔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지금도 수송기를 뜯어내 세숫대야를 만드는 일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반면 기술혁신, 즉 이노베이션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나라에 액정화면 모니터를 한 대 팔면 그걸 뜯어 해체해본 뒤 그보다 화질이 앞선 제품을 6개월 만에 만들어낸다. 바로 중국이 그렇다. 이같이 이노베이션(Innovation)은 한 나라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돼 가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이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리포트가 처음 나온 것은 지난 1967년 1월 미국에서였다. 미국 상무부가 이것을 내놨다. 이후 지난 1983년 미국 중소기업청(SBA)도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지원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내고 이를 정책에 반영했다. 중소기업 기술혁신에 대한 민간 차원의 연구도 1963년 미국의 햄버그 겔만 뮐러 등 학자들에 의해 이어졌다. 기술혁신은 드디어 경영혁신과 함께 이뤄지기 시작했다. 리엔지니어링 TQC 벤치마킹 등 갖가지 혁신기법으로 발전했다. 최근 들어 개리 해멀,마빈 패터슨 등 학자들이 기업혁신에 관한 책을 내면서 다시 이노베이션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중소기업의 혁신'을 꾸준히 강조해온 곳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다. OECD는 지난 1982년 프랑스 파리에서 '중소기업의 혁신'이라는 리포트를 내고 중소기업의 혁신이 국가경제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했다. 이어 OECD는 중소기업의 혁신 수준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를 표준화했다. 이 매뉴얼은 국가별 기업경쟁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OECD는 "국가 기술혁신은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기술혁신을 하지 못하면 국가경쟁력도 상실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경제신문은 OECD 평가기준 등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혁신성을 평가해볼 수 있는 지표를 마련했다. 중소기업들은 이 '중소기업 혁신평가 기준'을 통해 스스로 5가지 항목의 평가기준에 따라 자기 기업의 혁신성을 평가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들 항목은 △종업원 혁신성 △혁신비용 △혁신매출액 △혁신이익률 △혁신자산 등이다. 이들 평가 기준에 따라 스스로 매년 비교해 보면 기업의 혁신성과 성장성을 즉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추천을 받아 혁신평가 점수가 높은 8개 기술혁신 기업을 선정했다. 이번에 선정된 기업은 청우네이처 엔터기술 웅진코웨이개발 씨코 도원디테크 한국도자기 듀오백코리아 엔텍 등이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 ------------------------------------------------------------------------- < 기업 혁신평가 5가지 기준 > (1) 종업원 혁신성 =종업원 한사람이 어느 정도의 혁신성을 가졌는지 분석해 봐야 한다. 연간 종업원의 아이디어 제안 건수에 기업의 특허권 신청 건수를 더해 종업원수로 나누면 된다. 종업원의 개별 창조성을 부추기는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2) 혁신 비용 =혁신비용을 얼마나 썼느냐를 평가해 봐야 한다. 이는 미래를 어느 정도 준비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혁신비용에 매출액을 나눠 백분율로 표시하면 된다. 혁신비용은 혁신 관련 제안, 혁신수당, 연구개발비, 혁신교육훈련비 등이다. (3) 혁신 매출액 =혁신매출액 대비 전체 매출액을 분석해 봐야 한다. 이는 매출액중 혁신에 의해 발생한 매출을 분석하는 것이다. 미래 매출 증가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지표가 된다. 혁신매출액에는 특허 제품 및 아이디어 제품의 매출액중 3년 이내인 것만 적용한다. (4) 혁신 이익률 =혁신매출에 대한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도 평가해 봐야 한다. 창조매출이 일반 매출에 비해 이익률이 얼마나 높은가를 평가해 볼 수 있다. 또 혁신매출의 이익률이 어떤 추이로 나가는지 분기별 또는 연도별로 파악할 수 있다. (5) 혁신 자산 =혁신자산에 얼마나 투자했느냐에 따라 미래의 기업 발전성 여부가 판가름난다. 혁신자산은 특허권 상표권 지식재산권 등 무형의 고정자산과 연구개발용 자산 및 교육용 자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