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엄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던가. 불로장생의 비법을 찾는 건 진시황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중세 39세,20세기초 49세에서 현재 66세(한국인 76.5세)로 늘었다. 암과 심혈관질환을 고치면 1백10세까지 살 수 있다고 하거니와 체세포 복제기술로 인공장기가 만들어지면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문제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아름답고 힘찬 젊음을 유지하면서 장수하는 것이다. 노화의 원인에 대한 여러 학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텔로미어 가설'이다. 텔로미어(telomere)는 그리스어 텔로스(telosㆍ끝)와 메로스(merosㆍ부위)의 합성어.세포의 염색체 끝에 붙어 세포 분열을 돕는데 세포가 한번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짧아져 50∼60회 정도 분열하면 더이상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그렇게 되면 세포가 죽는다. 미국의 생물학자 레너드 헤이플릭이 텔로미어의 이같은 역할을 발견한 뒤 90년대 중반부터 텔로미어의 길이가 노화 및 수명과 관련있다는 '텔로미어 가설'이 제기됐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텔로미어의 마모를 막는 방법에 매달렸고 그 결과 텔로머라제라는 효소를 찾았다. 텔로머라제로 텔로미어가 닳는 걸 예방하면 노화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셈. 그러나 텔로머라제가 건강한 세포를 암세포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에 부딪쳤다. 연세대 노화유전자 기능연구센터 이준호 교수팀이 실험용 벌레인 선충의 염색체끝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려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가설대로라면 이번 연구결과가 불로장생이라는 인류의 오랜 꿈에 한걸음 크게 다가서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동물실험이 인간에게도 적용되자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텔로미어를 인위적으로 길게 만들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혀야 한다. 다행히 텔로미어 조작으로 청춘 1백세의 소망을 이룬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퇴직은 빨라지는데 늘어난 생애,무한정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불로장생에 대한 연구 못지 않게 늘어나는 인생의 후반기를 제대로 보낼 법도 강구돼야 한다면 너무 성급한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