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장관들이 따로 놀고 있다. 총선 이후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과 이정우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이 주요 경제 현안에 공세적인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경제팀내 리더십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혼선도 가중되고 있다. 부실기업 인수를 통한 노동조합의 경영참여와 출자총액 규제, 대기업집단 금융 계열사의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한도 축소 등 민감한 기업 관련 이슈들을 놓고 정부내 불협화음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국제 유가 급등과 중국 경제 경착륙 가능성 등 외부 불안요인들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 내 조율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거칠게 흘러나오는 고위 정책 당국자의 '말'들이 기업의 불안심리를 가중시킨다는 지적들이다. 경제계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 이후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정부의 기업정책에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거시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재정경제부는 각종 세제지원을 통해 기업의 '창업가 정신'을 북돋으려던 시도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각 부처 장관들은 물론 여당과 정부가 지금처럼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경우 경제정책 혼선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 노조 경영 참여 정책 혼선 이헌재 부총리는 7일 대우종합기계 매각 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조합의 기업 인수 추진에 대해 "(노조에) 특혜를 주지 않을 것이며, 차별 대우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다. 이 부총리는 지난달 23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노조가 기업 인수를 추진할 경우 입찰 가격뿐만 아니라 경영능력이나 채무상환 능력 등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가 경영이나 채무상환 능력에서 상대적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노조의 기업 인수'는 어려울 것임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반면 이정우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은 이날 열린 경제장관 간담회에 앞서 "대우종합기계 노조가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지분을 인수하려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차입금으로 지분을 인수하는 것에 대해서도 "채권단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 의결권ㆍ출자규제 논란 공정거래위원회는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한도를 현행 30%에서 15%로 축소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고객 자산으로 매입한 동일 계열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범위를 제한, 보유 지분을 넘어서는 대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계는 이 경우 지분 분산이 잘 된 상장 우량 기업들이 보호를 받지 못해 적대적 인수ㆍ합병(M&A)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헌재 부총리는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적대적 M&A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장치를 선진국 수준으로 두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기업 사냥꾼에 대한 공개매수 의무 부여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허용하는 경영권 방어 수단을 국내 기업들에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공정위 정책 취지와는 상반된다. 출자총액 제한 제도와 관련, 공정위는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예외 적용 범위를 축소한 반면 재경부는 사모펀드 출자금액을 출자총액 한도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 성장-분배 논쟁 정부는 총선 이전에 재경부를 중심으로 경제 살리기에 주력해 왔다. 외환위기 이후 극도로 몸을 사리는 기업들에 '창업가 정신'을 불어넣기 위해 창업형 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 지원책을 쏟아냈고, 이 부총리는 집무실에 '기업부민(起業富民ㆍ산업을 일으켜 국민을 부유하게 한다)'이라는 액자를 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 워크숍에서 이정우 위원장은 "개혁을 미루고 성장에 치중하면 열 걸음도 못간다. 개혁을 해야 성장도 가능하다"며 분배와 경제력 집중 완화를 강조했다. 여기에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경제 분야 수석부처인 재경부와 공정위간 의견 조율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열린우리당과의 당정 협의가 이뤄진데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이헌재 경제팀의 리더십이 한계에 봉착한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내부의 진보ㆍ개혁세력이 분배와 형평성 문제를 본격 제기할 경우 정책 혼선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