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여야 모두 실용주의라야 한다..李榮善 <국제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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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사람들이 극도로 합리적이라면 대선 또는 총선에서 투표율이 얼마나 될까? 선거의 판세가 극도로 불투명해 유권자의 한 표가 선거 결과를 결정지어 줄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유권자 상황을 다음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 이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않아도 쉽사리 당선되리라 예상되는 경우이다.
이 때 이 유권자는 구태여 투표를 하며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투표를 포기하고 다른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 된다.
둘째 경우는 한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낮은 경우이다.
이 때에도 이 유권자는 투표하러 가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유권자가 투표를 하더라도 그 후보자가 낙선될 것을 당선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며 결국 공연히 시간만 낭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일 수록 투표율이 낮은 이유는 시간의 가치가 높은 선진국 시민들이 자신의 한표가 선거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과 자신의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는 사실을 깨닫고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민주화 열풍이 몰아치던 때에 우리나라의 총선 투표율은 80%를 상회했으나 그 후 계속 낮아져 최근에는 선진국 모습을 닮아 50%대에 놓여 있다.
우리 국민들도 다분히 경제적으로 합리적이 돼온 모양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번 총선에선 투표율이 역으로 5% 가량 높아졌다.
왜 그렇게 됐을까?
이번 총선의 특징을 요약한다면 이념과 노선의 경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어느 총선에서 보다도 정당들의 이념과 노선이 명확히 부각됐으며 또한 유권자의 세대 차이에 따른 진보와 보수노선에 대한 선호 여부가 분명했던 선거였다.
정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이 분명할 수록 투표율은 오를 수 있다.
만일 정당간 노선차이가 불분명하고 후보의 인물이 모두 그렇고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 후보자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투표 전에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두꺼운 후보소개 책자를 보내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꼼꼼히 읽는 유권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투여해 연구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후보자를 찾아내기가 힘들 뿐 아니라, 설령 찾는다 해도 자기의 한 표로 그를 당선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이런 행위를 합리적 무관심(rational ignorance)이라 부른다.
이번 총선에서 정당들의 이념이 비교적 명시화돼 유권자들이 애써 후보자들의 성향을 찾아내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게 해주었다.
또 그동안 세대별로 다른 이념을 형성해 왔다는 사실이 이번 총선의 투표율을 증가시킨 계기가 됐다.
총선이 끝난 후 여당과 야당 모두 앞으로의 정책 방향 설정을 놓고 논의가 분분한 모양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은 다음 선거에서도 집권을 목표로 할 것이다.
집권을 위해 이념노선을 더욱 분명히 할 것인가 아니면 실용주의를 따를 것인가가 그들의 당면과제이다.
일단 이념을 달리하는 양당체제가 구축됐다고 가정할 때 다음 선거에서는 이념 자체보다는 국민 다수의 후생과 안정에 기여하는 정당이 다수의 표를 얻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 집권당이 어떤 경제적 성과를 실현해 내느냐가 재집권 여부의 결정요인이 될 것이다.
집권당이 경제적 성과를 올리지 못할 경우 표의 향방을 좌우했던 젊은 세대들의 이념에 대한 집착이 약화될 것이다.
또 자신이 지닌 이념이 자신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함을 경험할 때 그들은 다시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야당도 마찬가지이다.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극단의 우파적 노선을 고수한다면 합리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새 세대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양당은 정체성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용주의를 택해 갈 것을 권하고 싶다.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