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개혁(분배)'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간, 청와대와 정부, 정부와 집권 여당 간 논란이 갈수록 증폭되는 모습이다. 국제유가 급등과 같은 외부 악재 속에 주가가 급락하는 등 실물경제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개혁 이념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며 경제정책 리더십을 실종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출자총액제한 제도와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가 보유한 동일계열 주식의 의결권 축소,계좌추적권 연장 등을 둘러싼 정부 여당 내 '선명성 경쟁'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최근의 위기상황을 지나치게 안이하게 본 결과가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주가 폭락 등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했던 10일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정세균 정책위 의장이 만나 나눈 대화내용은 이런 우려를 확인시켜줬다. 대화가 시종 '성장과 개혁'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것. 대외 여건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정부와 집권 여당의 무기력한 대응을 간접적으로 보여준게 아니냐는 점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열린우리당 쪽은 '정부의 개입과 기업개혁'을 강조한 반면, 이헌재 부총리는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정부가 개별 사안에 일일이 개입해서는 곤란하다"고 맞서는 등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주요 대화 내용. △ 김근태 대표 =최근에 와서 열린우리당의 경제개혁이 실종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경제개혁은 흔들림 없이 간다. △ 이헌재 부총리 =경제개혁은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시장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민생 안정을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핵심은 아니다. 우선 투자가 일어나고 성장이 돼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 △ 정세균 정책위의장 =남북관계도 경제논리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 이 부총리 =북한이 기본적으로 개방경제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이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소득격차도 성장과 연관된 문제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나 민생 안정 정책은 기본적으로 투자가 일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투자와 일자리는 정부보다는 시장의 몫이다. △ 정 의장 =일자리를 포함한 경제 현안이 일부 재벌의 손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2위까지 올라간 것은 경이적이다. 그러나 이는 현대자동차보다 중소 부품업체들이 잘해서 그런 것이다. 추경도 필요하다. △ 이 부총리 =아직 추경 여부는 판단하기에 이르다. 하지만 그 전이라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신보나 기술신보 등의 보증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도록 하겠다. △ 정 의장 =시장개혁과 관련해 정부 내에 이견이 있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시장개혁을 지속할 생각이다. 재경부도 당의 입장을 반영해 개혁 의지가 퇴색되는 일이 없도록 해줬으면 한다. △ 이 부총리 =시장개혁은 결국 시장의 자율적 규율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주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 김 대표 =(시장개혁에 대한 의견이 여러 개로 나눠지고 있는 상황인데) 무엇보다 국민통합을 이뤄내야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다. △ 이 부총리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말이 있다. △ 정 의장 =시장경제를 신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시장이 실패할 때까지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 이 부총리 =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는 정부가 사전적으로 예방하고 사후적으로 결단있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개별적인 리스크(개별 기업의 문제)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정리=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