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세계속으로 '망각의 수사학' .. 박주택 새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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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내면의식의 파동이나 물결들이 흘러가는 대로 표현하려고 애썼습니다.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그때 그때 떠오르는 시상들을 훼손하지 않고 나타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지요."
제5회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한 박주택 시인(45)이 5년만에 네번째 시집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이전 시집인 '꿈의 이동건축''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두운 영혼의 그림자를 형상화하는 데 주력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층 심화된 내면세계로 '침잠'한다.
'나 다시 잠에 드네,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리네/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을 때까지'(표제작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중)
시어가 대체로 어둡다는 지적에 대해 시인은 "암울했던 지난 시대상황의 탓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인 고립감도 한몫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이 온다'는 밝음보다는 어두움,낮보다는 밤을 선호하는 이러한 시인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는 시다.
'저렇게 새벽이 밀려들어 오면 밤을 의지하던 사람들은/어디로 가라는 것인가…어둠에 몸을 풀고 술의 노래에 허무를 이기다/어디론가 흩어지는 사람들/새벽은 아가리를 벌려 하늘의 수많은 별을 잡아먹고/핏빛 광선을 세상에 흩뿌리는데…아아,아가리가 있는 것은 무섭다'('새벽이 온다' 중)
"가끔 술 한잔 한 뒤 밝은 날에 제 시를 보면 '왜 이런 시를 썼을까''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지요.
하지만 기존의 한국시가 특정 대상을 지나치게 가공하고 조형하는 데 진력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란 느끼는 대로 쓰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합니다."
문학평론가 오형엽은 "시를 쓰는 것이 기억의 재생이 아니라 기억의 무화이며 기억으로부터의 해방이라면,박주택이 추구하는 '망각의 수사학'은 한국 현대시에 있어서 새로운 시적 영역에 진입하는 것이 된다"고 평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