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이헌재가 맞다 .. 이학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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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神政)에 가까웠던 중세 유럽사회에서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을 죄악시했다.
농부는 자신이 수확한 곡물을 어떤 가격에 파는 게 '공정'한지를 신부님에게 물어 지침을 따르곤 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물산의 유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중세 유럽이 정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암흑기를 보냈던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신정론자들이 주목한 것은 백성의 '요구'였다.
되도록 싼 값에 물건을 사는 것,그것이 많은 수요자들의 요구였고 신정론자들은 그런 다수의 요구를 선(善)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그런 요구는 생산자의 이윤 동기를 사그라들게 했고,생산활동을 위축시키는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
요즘 한국에서 때 아니게 중세 신정론자들이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을 봐야 하는 심정은 착잡하다.
대기업의 신규 출자를 규제하고 금융회사의 계열사 의결권 행사를 막아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밀어붙여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킨다는 논리는 중세 신정론자들만큼이나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총선 이후 집권 여당과 행정부 일각에서 성장 못지않은 '개혁(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집착하면서 '총선 민의'를 내세우는 것에도 나름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 싶다.
그러나 대중의 '요구'가 십중팔구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낸다는 것은 이미 몇 권의 교과서를 써도 좋을 만큼 많은 실증 사례를 남기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부활된 대기업 출자규제는 '기업의 고른 성장'이라는 기대와 달리 8년째 기업들의 실질 설비투자를 제자리에서 맴돌게 했고,그 결과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그만큼 갉아먹는 것으로 귀결됐을 뿐이다.
분배 문제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조직화를 통해 의도한 소득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성 노조를 포함한 '적극적 소득계층'과 소득 결정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일시직 근로자 등의 '소극적 소득계층'으로 구별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현대 경제학의 학문적 연구 소산이다.
이런 본질을 간과한 채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낭만적 '요구'는 기업으로 하여금 비정규직 채용 자체를 기피하게 만드는 더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게 뻔하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엊그제 집무실로 찾아온 여당의 원내대표와 정책위원회 의장에게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없다"며 개혁과 분배에 대한 교조적 집착을 경계한 것은 이런 고뇌의 결과로 보인다.
'개혁'에 대한 개념을 놓고 "부(富)의 양극화 해소 등 분배 개선"을 강조한 여당 원내대표에 대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시장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게 개혁"이라고 받아넘긴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부총리는 정부·여당 내에서 점차 '소수'로 내몰리고 있다.
출자규제 강화 등 공정거래법 개정을 놓고 공정위원장에게 밀려 있는 부총리를 향해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공정위원장이 맞다"고 협공을 했고,여당 정책위 의장도 "당의 입장을 반영해 개혁의지가 퇴색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압박하는 등 사면초가로 몰리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정치논리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당장 다중(多衆)의 입맛에 맞는 '요구'를 갖고 경제를 재단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렇지 않아도 안팎의 악재에 치여 신음하고 있는 경제에 '분배냐 성장이냐'의 이념논쟁까지 덧칠해 혼란을 가중시키는 게 '총선 민의'인지 따져볼 때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