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 원산지 증명 방식은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가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외교통상부는 그냥 중립적인 입장입니다."(통상교섭본부 관계자) 정부는 지난 10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부실 협상' 논란을 빚었던 한·싱가포르 FTA 원산지 증명방식을 당초의 '수출자 자율발급제'에서 '기관발급제'로 바꾸기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 1월 말 싱가포르 정부에 자율발급제를 협상 초안으로 제시한 지 3개월 반만의 일이다. 지난 2월 한국경제신문이 자율발급제를 도입할 경우 중국 등 제3국 제품의 우회수입이 증가할 가능성 등 부작용론을 처음 제기했을 때 통상교섭본부는 "수차례의 관계부처 협의와 업계 의견 조율을 충분히 거쳐 자율발급제를 정부안으로 채택했다"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내놓았었다. 그렇다면 불과 3개월 반만에 관계부처 협의가 뒤틀리고 업계의 의견이 1백80도 달라졌다는 얘기일까. 중계무역국가인 싱가포르와의 FTA 추진에서 최대 쟁점사항 중 하나가 원산지 증명방식이다. FTA 관세인하 특혜를 노린 싱가포르 주변 동남아 국가들로부터의 우회수입 증가가 뻔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원산지 증명 제도는 한마디로 순수한 싱가포르산(産) 제품만 선별해 관세 특혜를 주겠다는 취지다. 우회 수입 방지를 위해 자율발급제와 기관발급제 중 어느 방식이 더 나은지 FTA 발효실적이 한 건에 불과한 한국으로선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발급제를 고수한 재경부와 기관발급제를 주장하며 팽팽히 맞선 산자부의 속내가 전형적인 부처간 '밥그릇 싸움'인지 국익을 위한 순수한 열정인지 파악하기는 더욱 어렵다. 문제는 '중립'을 표방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부처간 불협화음을 멀뚱히 지켜본 통상교섭본부의 자세다. 재경부와 산자부 사이에 껴 눈치만 살핀 바람에 공연한 혼선을 빚도록 했던 건 아닌지 자성이 필요할 것 같다. 최근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통상교섭본부가 경제·통상 외교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이유가 뭔지도 곰곰이 새겨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정호 경제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