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기업이 연구개발(R&D)한 반도체 성능측정기계 설계도를 빼돌린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훔친 설계도면을 일본의 협력업체에 넘긴 것으로 밝혀져 국내 첨단기술의 해외유출도 우려되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2일 국내 S사가 개발한 반도체 성능측정 장비인 '번인챔버(Burn In Chamber)' 설계도를 훔친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로 C사 강모 부사장(42)을 구속했다. C사 고모 사장(44)과 S사 전 생산부장 이모씨(47)는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 부사장은 지난 2월 초 주식, 현금 1천5백만원 등을 미끼로 S사 생산부장 이씨를 매수해 24일 S사의 번인챔버 설계도를 빼돌렸다. 이 도면으로 자체 생산을 추진했다가 실패하자 이를 3월29일 일본 설계전문회사인 W사에 보내 설계를 의뢰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W사 역시 설계도만으로는 번인챔버를 만드는데 실패, 설계기술부장 A씨(43)를 한국에 보냈고 4월22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C사 공장에서 이 회사 직원들과 함께 번인챔버를 분해하던중 신고를 받고 들이닥친 경찰에 체포됐다. 강 부사장은 "이씨가 가져온 설계도를 받은 것은 잘못이지만 일본에 설계를 의뢰해 자체 생산하려고 했을 뿐"이라며 계획적인 해외기술 유출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이씨는 "S사는 곧 망할 것이라는 C사가 퍼뜨린 소문을 믿고 C사 요구대로 설계도를 빼돌렸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해 이번 범죄가 조직적인 공모에 의해 이뤄졌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S사가 특허를 갖고 있는 번인챔버는 반도체 성능을 최종적으로 80∼1백20도의 고온에서 6∼48시간 동안 측정하는 기계로 외국 제품에 비해 생산 능력이나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S사는 6백억원 상당의 이 장비를 95년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에 납품해왔다. 한편 경찰은 W사의 경우 과거 인연으로 알고 지내던 C사 고 사장의 부탁을 받고 번인챔버 생산을 선의로 도와주려했을 뿐 범죄에 연루된 혐의점은 일단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