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비자금 .. 형난옥 <현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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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난옥 < 현암사 대표 ok@hyonams.com >
지난 선거의 특징 중 두드러지는 건 '돈' 냄새가 덜 난 선거였던 것 같다고 누구나 입을 모은다.
선거 치르기 전 끝이 안 보이는 뇌물폭탄의 뇌관을 캐다 보니 두껍게 복개해 놓은 개천 밑에서 메탄가스가 폭발하듯,피할 방법이 전혀 없이 터져 비자금과 관련한 보도만 보면 우리 모두는 서글픈 마음에 졸지에 너나없이 감사관이 되어 비꼬고 비웃고 육방으로 삿대질해댔는데 이번 선거와 함께 정치권의 돈 얘기는 이젠 정말 끝나나 싶었다.
그런데 또 웬 말인지! 천문학적인 숫자의 비자금 중 남은 돈이 몇 십만원에 불과하다던 전직 대통령의 영부인께서 1백억원대에 이르는 돈을 은닉한 게 드러났다.
그 아들까지도.영부인이나 아들이라면 법적 테두리로는 구속할 방법이 없을지 몰라도,우리 정서로는 한솥밥 식구인데 석연치 않다.
절 돈이 중 돈이고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는 말도 있는데 어찌 다른 성격의 돈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새삼 희한하게 여겨진다.
대학 입학 부정사건,선량들의 뇌물 외유,정경관민 유착,희대의 차떼기사건,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은 각기 다르지만 원인과 결과는 같다.
뇌물 소동 속에 우리의 희망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절망만 넘친다.
우린 참 오랜 세월 동안 뇌물에 코가 꿰인 정치인을 우리의 대표자로 믿고 나라를 통째로 맡겨왔다.
민주 표방 50년이 넘도록 우린 이 뇌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뇌물 문제는 선거 때마다 대두되고 어느 정당도 예외 없이 파편을 맞아 왔으며,대통령도 여기에 연루돼 있었다.
아니 연루가 아니라 주범이었던 것 같다.
이런 뇌물 사건을 보며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은근히 뇌물 줄 궁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도 있었다.
이 치사한 야합 속에서 우리 민주주의는 왜소한 이기주의로 변질하고 자본주의도 물신 숭배의 천민자본주의로 전락했다.
이런 사건 때마다 몇몇 본보기만 처벌하니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냐는 논리가 사회에 만연해 있는데,이번엔 정말 제대로 밝혀내 제자리로 돌려놓아야만 민주주의도 구현될 것이다.
대통령의 비자금,어떤 것보다 앞서 이것을 원상복구해 놓는 길만이 우리 모두 떳떳해질 수 있는 길이다.
그래야 기업도 엉뚱한 데 돈 안 쓰고 연구개발(R&D) 자금이나 팍팍 써서 창의력 있는 생산이 제자리를 잡을 것이며 국민소득 2만달러도 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