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증시안정대책 '공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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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8시 서울 명동의 은행회관에 재정경제부 차관을 비롯 경제관련 부처 차관들이 모였다.
오전 11시에는 증권사 사장단이 여의도 증권업협회로 긴급 소집됐다.
주가가 연일 급락하자 증시안정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 소식을 접한 한 투신사 펀드매니저는 "회의를 하고 대책을 세운다고 뭐 달라질 게 있습니까"라며 쏘아붙였다.
그는 "회의 결과는 안 봐도 뻔합니다.
기관들은 주식매도를 자제하고,중장기 주식 수요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것 아닙니까"라며 "주가폭락시마다 반복되는 금융당국의 의례적인 립 서비스는 지겨울 정도"라고 꼬집었다.
실제 회의에서 나온 기관매도 자제,연기금 주식투자확대,기관투자가 육성 등의 증시안정 대책은 수년간 귀가 따갑도록 들은 해묵은 레퍼토리다.
결과도 예상대로였다.
기관들은 매도자제 결의 직후 14일까지 총 1조1천5백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증시를 개인투자자에게 맡긴 것이다.
한 개인투자자는 "증시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기관들이 오히려 주가급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성토했다.
다른 투자자는 "대통령 탄핵기각을 축하하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국내 기관들에 증시안전판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국내 기관의 주식보유 비중은 작년 말 현재 16% 수준.미국 홍콩 등 선진증시의 기관비중이 50∼60%에 이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조막손'에 불과하다.
반면 국내증시의 외국인 비중은 43%로 세계 주요증시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초 외국인이 2조2천억원어치를 순매도하는 사이 60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증발할 정도로 외국인의 입김은 거세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역학구도에서는 '세계 최대의 주가 변동성'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 증권사 사장은 "정책당국의 의지와 구체적인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기관투자가 육성이란 과제는 공염불에 그치고,위기 때마다 알맹이 없는 증시대책을 되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조했다.
장진모 증권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