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2기를 시작하는 담화문을 통해 "여론에 쫓기고 인기를 좇아서 허겁지겁 (경제)대책을 내놓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대중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와 일정한 선을 긋는 동시에 단기 부양책보다는 장기 성장잠재력을 키워 나가는데 주력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경제사정이 급하다고 원칙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며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개혁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계는 대통령이 '개혁'을 제대로 추진해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통치의 근간인 행정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개혁 아젠다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장관 '이해집단 대변' 없어져야 현 정부는 지난 1년여 동안 '여론'에 좌우돼 주요 국정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새만금 간척사업이나 서울 외곽순환도로 건설, 스크린쿼터 축소, 원전 핵방사선 폐기물 처리장 건립 등 주요 사안이 지연되거나 아예 진척조차 보지 못했던 것은 각 부처와 관련된 이해단체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장관들 때문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실제로 환경부 장관이 환경단체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고,노동부 장관은 노동계의 입장을 전달하는데 골몰하고, 문화관광부 장관은 국내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는 '여론에 쫓기고 인기를 좇는' 대중 영합주의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 상무(정책분석팀장)는 "정부는 하나이고 각 부처의 고객은 국민 전체"라며 "각 부처는 이해집단들의 의견을 듣되 국민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걸러내는 작업을 해야 하고, 이해집단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을 해치지 않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소모적인 이념논쟁 없애야 여당의 총선 승리 이후 정부 부처 간에 갈등을 빚어온 '성장과 개혁(분배) 논쟁'도 시장을 혼란케 했다.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을 축소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좌추적권을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놓고 장관들 간에 빚어온 불협화음은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요인들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이념 대립을 지양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노 대통령은 이념 논쟁을 지켜보기보다는 정책 판단의 잣대를 세워주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장원리에 충실한 인물에게 경제행정 맡겨야 중국 쇼크와 고유가 등으로 촉발된 경제위기가 가중된 것은 재경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 부처들의 정책 혼선과 경제정책 리더십이 흔들린 데에 큰 원인이 있었다. 소득 분배를 위한 최상의 방책은 일자리 창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일각에서는 이미 쌓인 부(富)의 재편만을 강조하는 흐름을 보이기도 했다. 이창용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기득권 청산에만 부처별 개혁의 목표를 맞춰서는 곤란하다"며 "재벌을 개혁한다면 그 이후 경제성장을 누가 어떻게 주도할 것인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먼저 내놓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