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스무살과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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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사이클선수 랜스 암스트롱은 잘나가던 스물다섯살에 자신을 덮친 암을 이겨내곤 이렇게 썼다.
"암에 걸리기 전엔 세상의 부정에 어떻게 대항할지,내 안에 서서히 스미는 냉소주의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다. 지금 나는 전처럼 무모하고 불안정하지 않다. 공격적인 면은 줄고 기술과 방법은 세련됐다."
'성장통' 혹은 '지혜열'이라는 게 있다.
아이들이 부쩍 크거나 다소 벅찬 걸 익힐 때 갑자기 아프거나 열이 오르는 걸 말한다.
한바탕 앓고 나면 몰라보게 달라지지만 앓는 동안엔 힘들고 괴롭다.
어른이 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거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선인들이 성년식인 관례를 혼례나 장례 제례 못지 않게 중시,성대하고 엄숙한 식을 치른 것도 성인이 된다는 일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우쳐주고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각인시키려는 조치였을 것이다.
5월 셋째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제정,만 스무살이 된 이들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게 틀림없다.
스무살이 됐다고 생각과 행동이 갑자기 바뀌기는 어렵다.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하고 기성세대의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건 가능성이 그만큼 크고 선택의 폭 또한 넓다는 걸 뜻한다.
다만 모든 선택엔 책임이 따른다.
세상엔 퀴리부인을 백혈병에 이르게 한 방사선 물질처럼 발견 초기 명약인 줄 알던 게 독약인 경우도 흔하다.
스무살은 또 꿈을 향해 망설임 없이 정진해야 하는 나이다.
꿈을 이루자면 상상력을 키우고,흐름을 좇기보다 목표 달성을 위한 실력을 기르고,현상을 파악할 때 어디까지 타당하고 어디까지 부풀려진 얘기인지 가려야 한다.
상상력이란 막연한 게 아니라 세계를 달리보고 가능성을 점치고 대안에 대한 이해심을 증진시키는 것인 만큼 탄탄한 지식 없이 생겨날 수 없다.
오늘 스무살 성년이 된 이땅 젊은 주역들이 선입견 때문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고,사는 동안 만나는 어려움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믿고 차근차근 한걸음씩 자신의 큰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