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작가 성석제는 소설가 원재길을 가리켜 "그는 웃음과 역설이라는 기름칠 된 연장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물과,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관계에 대해 꼼꼼히 천착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고 평한 바 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이를 작품 속에 녹여낸다는 뜻이다. 원씨가 2000년 '벽에서 빠져나온 여자' 이후 4년만에 내놓은 세번째 소설집 '달밤에 몰래 만나다'(문학동네)는 파격적인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유머러스한 문체 등 작가의 색깔 있는 글쓰기를 온전히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평생을 잠으로 보내는 한잠순 여사('한잠순 여사 약전(略傳)'),뒷산 등산로에 어느날 출몰한 외뿔염소('달밤에 몰래 만나다'),어릴 적 헤어진 마술사 아버지('바다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 소설집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냉혹한 현대사회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이 속에서 작아져만 가는 개인들의 삶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드러낸다. '한잠순…'에서 주인공 한잠순 여사의 본명은 한유순이지만 워낙 잠이 많아 별명이 잠순이로 붙여졌다. 어느 정도냐 하면 '신랑 박군이 자신의 옷을 벗기는 중에도 잤고,신혼여행 아기를 만드느라 신랑이 팔굽혀펴기를 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중에도 계속 잠을 자는' 수준이다. 할머니가 돼서야 한 여사는 그토록 잠을 많이 잔 이유를 밝힌다. 자신을 낳고 얼마 뒤 죽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 여사는 마침내 꿈속에서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고 평생의 멍에를 치유받는다. 표제작 '달밤에…'와 '꽃바람'은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내포하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고발을 담은 우화다. 작가는 흔히 비정상이라고 불리는 '다름'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가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