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처한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내수 침체와 가동률 저하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원유가격 급등과 중국의 긴축 경제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자금난을 호소하는 기업들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제대로 갚을 수 있는 기업이 20%에 불과할 정도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비율도 3%대로 급등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제16회 중소기업 주간(5월17~22일)'을 맞아 중소기업의 최대 현안인 자금난의 실상과 대책을 알아보는 긴급좌담회를 가졌다. 서울 여의도 기협중앙회 회의실에서 최근 이뤄진 이 좌담회에는 유창무 중소기업청장과 김용구 기협중앙회장,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 김인환 기업은행 전무 등 4명이 참석했다. < 참석자 > ( 가나다 순 ) 김용구 < 기협중앙회장 > 김인환 < 기업은행 전무 > 유창무 < 중소기업청장 > 장흥순 < 벤처기업협회장 > 사회=김낙훈 < 한경 벤처중소기업부장 > ------------------------------------------------------------------------ 사회=수출 중소기업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은 경영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가. 김용구 기협중앙회장 =기협이 최근 자체 조사한 것을 보면 중소기업의 68.1%가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ㆍ4분기중 중소기업은 판매대금 가운데 43.7%를 어음으로 받았다. 이들 어음의 결제기일은 무려 1백34.7일에 이른다. 작년에 비해 3.6일 길어진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도 계속 높아져 최근엔 3%대로 올라섰다. 중소기업들은 경색되는 자금 사정으로 더 이상 사업하기 곤란하다며 아우성이다. 김인환 기업은행 전무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자금 사정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업종과 규모에 따라 차별화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늘리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최근 상황이 나빠지면서 금융기관들이 중소기업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대출을 옥죄고 있다. 유창무 중소기업청장 =중소기업들이 체감하는 자금난은 지난해보다 더 심하다. 원자재 가격은 오르고 있는데 납품가격은 요지부동이니 중소기업인들의 속이 타는 것 아니냐. 하지만 중소기업 대출 중 1년 미만 단기대출 비중이 68.3%(1백60조원)라며 매스컴에서 '중소기업 대란설'을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으로 별 문제가 아니다. 연간 빌리고 갚는게 그 정도라는 얘기지 특별히 올해 만기 도래액이 급증한 것은 아니다.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 =기업의 자금은 사람의 혈액과 같다. 중소기업 자금난의 한 원인은 대기업들의 글로벌 아웃소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외국에서 부품을 조달하다보니 국내 중소ㆍ벤처기업들이 설 땅을 잃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수직적인 관계로 적절한 이윤을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코스닥시장이 위축되면서 자금을 직접 조달할 수 없는 데다 내수 침체로 상환 여력도 없다. 사회 =3년 전 벤처기업에 지원했던 P-CBO의 만기가 이달부터 도래하기 시작했다. P-CBO를 발행한 기업중 20∼30%는 도산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의 연쇄 도산과 같은 '중소기업 대란'이 실제로 일어날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데. 김 회장 =경기가 나빠지고 있는데 보증기관이 여력이 없다며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을 줄이고 있는게 문제다. 어려울 때일수록 지원 규모를 확대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보증 규모를 축소한다는 얘기만 나오면 중소기업은 굉장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장 회장 =금융기관들은 지난 3년간 리스크 관리만 해왔다.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소홀히 한 결과 기업경쟁력이 약화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술력 있는 기업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기술신보와 신용보증기금이 보증 확대를 통해 자금 물꼬를 터줘야 중소기업 대란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제대로 된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면 중소기업 대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유 청장 =언론에서의 우려와 달리 중소기업 대란은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이미 P-CBO에 대한 대처 방안이 마련돼 시장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또 추가로 6천억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확충하고 벤처ㆍ중소기업을 위한 특수목적 펀드를 조성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김 전무 =비제조업 영세제조업 벤처기업 등의 자금상황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부도나는 기업도 있겠지만 중소기업 금융대란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할인어음 등 1년 이내 단기 대출은 기업들이 살아가면서 밥 먹듯 쓰는 자금이다. 연내 도래하는 단기대출이 1백60조원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자금들이다. 중소기업 위기설을 부추겨서는 안된다. 사회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을 겪는다고 모든 기업을 무조건 지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소기업 자금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장 회장 =우선 기술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잘 구축해야 한다. 벤처기업은 보이지 않는 지식자산을 많이 갖고 있다. 이를 잘 평가해 신용으로 자금을 공급하면 건강한 벤처ㆍ중소기업을 키울 수 있다. 중소기업 자금난 해결 비법은 신용평가 시스템 정착에서 찾아야 한다. 김 전무 =중소기업은 중소기업 숫자만큼 문제가 많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조그만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 특히 신용대출을 정착시켜야 한다. 독일에서는 기업의 재무제표에 신경쓰지 않는다. 기술력과 사업성 평가에 역점을 두고 이를 토대로 대출해 준다. 국내 금융기관도 부동산담보나 재무제표보다는 기술력과 사업성에 중점을 두는 대출심사 관행을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 =중소기업 자금난과 경쟁력 저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경영난의 근본 원인은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고 그 결과 나타난 현상이 자금난이다. 따라서 자금문제를 풀려면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게 아닌지. 김 회장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정부가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규제를 많이 풀었다고 말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기업인들이 의욕을 갖고 사업할 수 있도록 해달라. 해외시장 개척 때 대만은 인건비까지도 지원한다. 우리도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유 청장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게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특히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좁히고 중국과는 넓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게 우리의 현실이다. 현장에서는 사람이 부족한데 청년실업자는 넘쳐나는 미스매칭 문제도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중소기업의 리스크까지 관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업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업전환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경쟁력이 낮은 전통제조업을 첨단 고부가가치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대신 경쟁력이 아예 없는 기업은 퇴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리=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