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모 벤처기업이 개발한 액정표시장치(LCD)용 플라즈마 화학증착(PECVD) 장치 관련 기술을 회사 내 중견간부가 CD에 담아 미국 경쟁업체에 유출시키려다 적발된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만약 이 기술이 유출되었다면 총 피해액이 1조6천억원에 달했을 것이란 분석기사도 있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이러한 뉴스에 우리는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훔친 대상으로서 'CD라는 물건'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지식'에 주목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천원' 내외짜리의 CD에 들어있는 지식이 '1조6천억원'이라는 사실은 과거 기준으로 보면 대단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미래학자들은 경쟁하듯 정보화사회,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었다. 마치 먼 미래의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그 미래사회에 우리는 이미 깊숙이 몸담고 있음을 이 기술유출 사건은 잘 보여주고 있다. 바야흐로 신기술과 신지식이 가치창조의 핵심이며 기업과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자리매김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부의 원천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창조하고 활용하는 데 모든 힘을 다하고 있다. 일본은 20세기 산업사회에 이어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도 세계경제를 주도하기 위한 핵심전략으로 지식재산 입국을 선언하고 지식재산의 창조·보호·활용을 촉진할 정책을 개발해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미국이 특허강화(Pro-patent) 정책기조를 유지해온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수년간 세계 제일의 부자 자리를 지켜온 빌 게이츠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MS사의 소프트웨어라는 지식뿐이다. 인류문명사를 통해 처음으로 빌 게이츠는 유형재산이 아닌 무체재산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기술과 지식을 보호하지 않고 아무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로 했다면 지금의 정보화사회가 가능했을까? 독창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 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의 정착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지 못한다면 땀흘려 기술을 개발하고 창조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식의 창조에 기여하지 못한 자가 무임승차해 연구의 과실을 취하게 된다면 이 사회는 결국 자체 지식 생산기능이 마비된 사회가 돼 버릴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고 하여 지식의 공유에 남다른 가치부여를 해왔다. 유교문화와 농업사회 공동체정신의 유산이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무조건적인 지식의 공유는 도리어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한다. 남의 아이디어를 베끼고 남의 기술을 도용하는 것은 이제 중요한 범죄행위로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최근 정부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을 개정해 영업비밀보호를 대폭 강화했다. 종전에는 해당업체 전현직 간부만 처벌하였으나 앞으로는 '누구든지' 영업비밀을 침해한 자는 '고발이 없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미수·예비·음모에 가담한 자도 처벌이 가능토록 해 점차 조직화,지능화되는 산업스파이 범죄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강력하게 보호함으로써 국부유출을 막고 기술개발을 촉진시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조금의 빈틈이라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과거 산업사회처럼 물건을 훔치는 것만이 범죄가 아니다. 지식재산을 훔치고 도용하는 것이야말로 지식기반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타인의 지식 창조노력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문화는 지식기반사회 구성원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기본소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