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복수 副장관제 도입하자..安世英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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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돌아왔다.
이제부턴 소모적 논쟁은 마치고 차분히 나라 일 좀 챙겼으면 좋겠다.
경제가 위기의 벼랑 끝에 섰으니 해야 할 나라 일은 많다.
우선 그간 선장 없는 배처럼 표류하던 관료조직의 고삐를 바로 잡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선 지금 관가를 술렁이게 하고 있는 정부조직 개편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
건국 후 지난 40년 간 50번이 넘게 정부조직에 손을 댔다.
경제기획원 탄생과 같은 역작도 있었지만 대부분 졸작으로 끝난 경우가 많다.
조직개편이 정치적 동기에 의해 행해지고 의견수렴 과정이 미숙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의 몇몇 핵심인물들이 밀실에서 만들어낸 공룡부처 재정경제원과 국민정부 때 그럴싸한 공청회를 거쳤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탄생한 통상교섭본부가 그 대표적 예이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은 디지털혁명의 충격에 대응해 글로벌기업과 선진국이 어떻게 조직을 정비하는가를 벤치마킹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 같은 배경에서 볼 때 무엇보다 대부(大部)주의와 복수 부장관(副長官)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IT산업의 놀라운 발전으로 전통산업간 장벽이 무너지고 이는 기존 부처간 업무영역의 통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선진 각국은 유사 부처를 통폐합해 대부주의로 나가며 장관 수를 줄이고 있다.
새 제도는 작은 정부 정신에도 부합된다.
그런데 문제는 큰 부처를 만들어 놓으면 장관의 통솔범위가 너무 넓어진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수 부장관 제도가 필요하다.
장관 아래 몇 명의 부장관을 두고 대신 현재의 1급 제도는 폐지 또는 대폭 축소하는 것이다.
영국 통상산업부에는 무역 산업 등을 맡고 있는 네 명 이상의 부장관이 있다.
이 부장관 제도가 현재 논의되고 있는 복수 차관제와의 차이는 대외활동능력이다.
차관이란 장관을 내부적으로 보좌하는 제한적 기능만을 가지지만 부장관은 부처를 대표해 국정감사 등을 받을 권한을 가진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관료조직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요즘 정책 하나가 결정되려면 '과장-국장-차관보-차관-장관'으로 이어지는 다섯 단계의 결재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새 제도에선 '과장-국장-부장관'의 세 단계로 줄일 수 있다.
이는 의사결정 과정을 세 단계 이내로 축소시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글로벌시대 생존전략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이 새 제도의 성패는 장관과 국회에 달려있다.
장관은 한 발 물러서 어지간한 업무는 담당 부장관이 전결 처리토록 해야 한다.
대신 대외 활동에만 전념하고 부처내 업무갈등이 있을 때만 조정자로서 개입한다.
다음으로 더 큰 이해는 국회에서 나와야 한다.
가을 국회 철이 되면 한두 달 공무원들은 장관 따라 철새처럼 여의도로 이동한다.
시급한 민생 현안을 챙겨야 할 국·과장들이 의원님들에게 질타당하는 장관을 돕기 위해 의사당 복도에 서성거린다.
부장관이 국정감사를 맡게 하면 훨씬 전문적으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고 여의도에 차출되는 공무원들의 수도 적어질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보면 우선 재경부 금감원 금감위에 흩어져 있은 금융관련 기능을 한 부처로 모아야 한다.
기술개발·정보통신 업무는 산업자원부에 합쳐 영국 통상산업부 같이 '광역형 산업부처'로 만들고, 1차 산업을 담당하는 농림부와 해양수산부는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획예산처를 재경부에 편입해 경제부총리가 예산권을 배경으로 정책을 조정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장관수를 현재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중단 없는 개혁을 국정 2기의 아젠다로 제시했다면 정부부터 먼저 뼈를 깎는 개혁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 줘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무위원 수는 무려 19명이나 된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 수준에 육박하는 수이다.
부처 통폐합과 부장관 제도는 선진국이 당위성을 검증한 제도이다.
이제 작은 정부를 향한 노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
syahn@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