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블랙먼데이"를 방불케한 17일 증권사 객장에는 깊은 좌절과 절망감이 짓눌렀다. 종합주가지수가 48포인트 급락,800이 무너졌던 지난 10일 여유 현금을 모두 털어 "물타기 매수"에 나섰던 개인투자자 김모씨는 "누굴 탓하겠느냐.이제 쉬고 싶다"며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장동헌 우리증권 고객자산운용팀장은 "향후 장세를 전망하고 진단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다. 시장이 기능을 상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기금이라도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장참가자들의 주문에 국민연금 관계자는 "둑이 터진 상황이다. 터진 둑을 막다가 자칫하면 우리도 다칠 수 있다"며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었다. ◆좌절과 절망에 휩싸인 객장 배한규 LG투자증권 방배동 지점장은 "영업점 근무 17년 동안 이토록 주가가 단기에 급락한 것은 처음"이라며 "증권사 지점의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일부 개인고객이 지수 800선 붕괴 이후 단기반등을 겨냥하고 저가매수에 나섰지만 시장이 다시 폭락세로 돌아서자 서둘러 손절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지수 800붕괴 후 5일 동안 순매수를 지속해 왔던 개인들은 이날 거래소시장에서 6백78억원의 순매도로 돌아섰다. D증권사 강남지점 관계자는 "증권사 상당수 지점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면서 "금융당국이 왜 이렇게 조용한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그는 "경제 위기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시장을 더 죽였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이날 '최후의 물타기'에 나섰던 여의도의 최모씨는 "여기서 더 빠지면 내 주식인생은 끝난다는 각오로 들어갔다"고 털어놨다. 코스닥 우량주를 고점에서 샀다가 순식간에 40% 이상의 원금 손실을 본 이모씨는 "현금을 들고 있는 사람이 부러울 따름"이라며 외환위기 때 유행했던 'Cash is King(현금이 왕)'이란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손발 묶인 기관투자가 이날 오전 11시께.주가지수가 750선이 무너질 무렵 S증권사 법인 브로커 K씨는 고객(기관의 펀드매니저)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다른 기관들이 손절매(로스 컷:loss cut) 규정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니 기관들의 저가매수를 기대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강신우 PCA투신 전무는 "과거 사례를 볼 때 이 정도의 단기낙폭이면 자연발생적으로 저가매수세가 생기게 마련인데 지금과 같은 매수 공백은 처음 겪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권욱 코스모투자자문 사장은 "위험자산(주식)에 대한 비(非)이성적인 회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투자심리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정부를 겨냥한 가시돋친 말도 잇따랐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저가 매수세가 살아나지 않는 데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투자심리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