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관련 용어 가운데 요즘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는 '혁신(革新)'이다. 경영의 수단으로 혁신을 내걸지 않은 회사가 없고 경영자치고 혁신을 강조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정부도 부처마다 혁신기획단을 두고 있다. 청와대만 봐도 업무혁신비서관(총무팀)과 혁신관리비서관(정책실)이 있다. '혁신'이 이렇듯 '대유행'이지만 과연 이쪽저쪽에서 쓰이고 있는 혁신이란 개념이 같은 뜻으로 통하고 있는 지는 의심스럽다. 지난 2월부터 '국가혁신 프로젝트,가치혁신(Value Innovation) 캠페인'을 진행해오면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혁신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대기업 사장의 표현을 빌리면 "가죽혁(革)자가 들어가 있어 살가죽을 벗기는 고통스런 장면을 떠올리는 종업원들이 많다." 혁신이 부정적인 용어로 변질된 데는 사실 이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혁신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지난 90년대 말 경제위기 때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명분으로 대량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부작용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기업이나 각종 조직에서 앞다퉈 도입해 실천하려는 경영운동으로서의 혁신은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사실이다. 경영 관련 용어로 요즘 쓰이는 혁신은 영어인 이노베이션(innovation)의 번역어일 뿐이다. 일상어가 아닌 '특수 용어'로 다루고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노베이션은 원래 라틴어 '노바(nova)',즉 새롭다는 뜻에서 나왔다. 그런 만큼 이노베이션은 새로운 물건이나 방법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바탕 아래 많은 학자들이 이론을 내놓았는데 대체로 보면 '새로운 가치나 그것을 창출하는 방법을 찾는 것'(조앤 마그레타 베인&컴퍼니 파트너),'발명(invention)과 개발(exploitation)을 합한 의미'(에드 로버츠 MIT대 교수) 등의 정의에서 나타나듯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행위를 일컫는다. 혁신담당자들은 이런 이노베이션의 뜻으로 혁신을 말하는 반면 최고경영자는 '완전히 새롭게 고쳐보자'는 각오를 다지며 밀어붙이고,직원들은 '살가죽을 벗기는 고통'으로 여겨 피하기 때문에 혁신운동이 겉도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혁신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논리라는 점이다. '5년뒤,10년뒤 무얼 먹고 살 것인가'하는 국가적 화두의 답도 결국 혁신에 그 실마리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이 올해의 화두로 '가치'와 '혁신'을 내걸고 '가치혁신 특별기획'과 글로벌혁신포럼(GIF:Global Innovation Forum:24일 오후 2시 한국경제신문 다산홀)을 기획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경과 함께 글로벌혁신포럼을 공동 주최하는 모니터그룹의 더글러스 퍼거슨씨(IMI 파트너)는 "혁신은 가치창출이 중심"이라며 "회사를 성장시키는 도구인 만큼 고용창출이 자연히 뒤따르게 돼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혁신을 축소지향적인 구조조정이나 비용감축,업무효율화 등으로 좁게 해석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지난 70년대 미국의 통계학자인 에드워즈 데밍과 조셉 주란을 초청해 신처럼 모셔가며 '품질'을 배웠다. 결국 '품질혁명'을 일으켰고 그것을 바탕으로 만든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앞세워 미국 본토를 장악했다. 빠른 도입 속도와 전파력을 볼 때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를 놀라게 할 '혁신혁명'을 일으킬 기반은 돼있다. 다만 일상어와 뒤섞여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혁신의 개념부터 제대로 정립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