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 행정부가 주한미군 2사단 일부 병력의 이라크 투입을 결정한 데 이어, 주한미군의 추가감축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나서 반세기 넘게 지속한 한미 군사동맹 관계가 중대한 변화의 길목에 들어섰다. 특히 부시 행정부가 이같이 한반도의 안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사전협의를 소홀하게 처리한 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미관계의 앞날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 일부 차출 및 추가 감축 가능성, 한미 외교채널의 정상적인 가동 여부 등을 포함한 주요 관심사에 대해 집중 점검해본다. ◇ 한미 협의채널 제대로 가동됐나 = 주한미군 일부 병력의 투입을 결정하면서 미국은 지난 14일 비공식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 같은 결정은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라는 양국간 공식 협의체를 전혀 거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지난 6∼7일 워싱턴 D.C에서 열렸던 미래한미동맹 제8차 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던 것으로 정부 당국자는 전하고 있다. 특히 이 사안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직결된 사안으로 미래한미동맹 회의의 핵심 현안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적 태도에 비판이 적지 않다. 한국 정부는 비공식 통보를 받은 지 사흘만인 지난 17일 양국 정상간 전화통화를 통해 이를 사실상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적 태도에는 문제가 있지만 이를 한미 외교채널의 문제로 직결시키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안은 기본적으로 이라크 포로 성학대 파문 이후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에서조차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고 오는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강력한 안정화 작전을 펴야 하지만 전환배치할 병력이 부족한 현실에 부딪힌 부시 행정부의 절박성에서 비롯된 `특단의 카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고위 외교안보 소식통은 19일 "포로 학대사태 이후 미 정부 내부에서 말할 수 없는 매우 긴박한 흐름이 있었을 것"이라며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며 이번 사안을 한미 외교채널의 문제로 비약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 주한미군 추가감축 가능성 = 이라크에 차출될 1개 여단, 3천600명의 주한미군 병력이 이라크 작전이 끝난 뒤 한국으로 복귀할 지 여부에 대해서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을 비롯한 정부 당국은 공식으로는 "아직 결정된 바 없고 앞으로 협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상 감축으로 가닥이 잡힌 분위기다.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 18일 "주한미군 일부의 이라크 차출은 전세계적인 미군 재배치 계획을 바탕으로 미군의 한국근무 교대기간 단축 결정과 이라크주둔 미군의 증강 필요성이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말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이라크 차출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지만, 나아가 주한미군의 추가감축 가능성이 곧 바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더욱 주목을 끄는 대목이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18일 "(정부는)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전력 재편방안(PR)과 관련해 미측과 주한미군의 조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것. 이같은 발언은 이르면 연내에 미국측과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공식으로 확인한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 규모와 관련, 그동안 미 군당국 실무선에서는 `1만2천∼1만5천명'설이 거론되기도 했다. 미래한미동맹회의에 관여한 한 정부 소식통은 "주한미군의 전반적인 재조정 및 감축 문제를 양국간에 아직 공식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며 "그러나 늘 주한미군 감축의 개연성은 있었고 정부도 논의 시기가 연초, 연중, 연말 중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금년내에 양국간 협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 안보 공백 없나 = 주한미군 3천600명, 1개 여단이 이라크에 투입되더라도 대북 억지전력에서 안보 공백은 거의 없다는 게 한미 양국 정부의 일치된 입장이다. 이번에 차출될 미 2사단 병력은 이라크 안정화 작전을 위한 `경보병' 위주로 구성될 것이어서 전력 공백은 거의 없고, 특히 주한미군의 전력을 단지 지상군 위주의 숫자로 평가해서는 안 되고 그 `존재 자체'가 대북 억지력을 이룬다는 설명이다. 주한미군 전력의 강점은 무엇보다 뛰어난 정보.전자전 전력과 막강한 해.공군전력에 있다고 대다수 군사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도 비무장지대 미군과 관련, "소용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역효과가 있는 인계철선 기능 외에는 아무 역할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군사전문가가 지적하듯이 전력 공백은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민 중 상당수가 주한미군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해왔던 `심리적 불안감'을 어떻게 연착륙시켜 가면서 해소해 나갈 것인가가 정부가 당면해 있는 숙제다. 하지만 이르면 올 여름부터 주한미군의 추가감축 협의가 이뤄질 경우 전력 공백문제가 본격적인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 사전대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반 장관은 "미국 정부는 향후 3년간 110억 달러의 군사전력 강화비용을 지출할 예정이고 여기에는 미사일 배치, 해.공군 전력 강화, 전폭기 증강배치 등이 필요하다"고 지상군 감축 가능성에 대비한 미국의 계획을 설명했다. 정부도 노무현 대통령이 천명한 `자주국방 구상'이 이미 해외주둔 주한미군 감축을 포함한 전세계 미군의 재배치를 염두에 둔 것으로서 이미 국방비 예산 증가를 포함해 한국군의 자주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 군사전문가는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며 "한미 양국 정부가 이라크 차출을 시작으로 이어질 감축 등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와 관련해 한미연합방위 태세의 약화를 방지하면서 굳건한 상호신뢰하에 이 같은 중요한 변화를 어떻게 치밀하게 관리해나갈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국군의 추가파병 `압박용' = 일각에서는 미국의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결정이 지지부진한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을 다그치기 위한 `압박용'이며, 이로 인해 한미관계가 악화돼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긴급한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일 뿐,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파병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파병 목표가 다르며, 미국의 소요는 외국의 파병을 감안해 짜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고위 군사소식통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우리 정부가 의도적으로 늦춘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 뿐더러 미국도 기술적 문제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정부의 추가파병 방침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인교준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