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패트롤] "지금 당장 계약금부터 걸자"..기획부동산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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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6시.
'투자자' 신분으로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 인근에 위치한 일명 '기획부동산'을 찾았다.
회사이름은 S기업.
대형 빌딩의 3개층을 빌려쓰고 있었지만 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내데스크를 따라 칸막이 상담실 10여개 중 빈 곳으로 들어갔다.
고급 의자와 책상이 놓여 있고 토지관련 서적들이 여러 권 꽂혀 있었다.
강남에만 4곳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직원 수가 2천명을 넘는다고 안내직원은 설명했다.
이따금 '우리는 할 수 있다'란 직원들의 단합성 구호가 들려왔다.
차를 마시며 1분 정도 기다리자 대리 명함을 가진 한 직원이 들어왔다.
전라북도 정읍시의 토지가 얼마나 투자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S기업이 정읍시 외곽지역 토지를 작년 말 대거 매입했으며 이 땅을 싼 값에 분양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정부가 올해 초 '신시가지 조성계획'을 발표한 후 땅값이 최고6배까지 뛰었지만 당초 매입가 수준으로 되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 물량 일부를 당초 가격인 평당 25만원에 싸게 팔겠다"고 강조했다.
20여분 뒤 실장이라는 간부가 들어왔다.
벽면에 걸린 지도를 쫙 펼쳐놓고 투자가치에 대한 설명을 반복했다.
브리핑이 끝난 후 "평당 25만원에 토지를 사려면 지금 당장 계약금 일부라도 걸라"고 독촉했다.
계약금을 걸면 다음날 오전 7시30분에 현장답사를 떠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답사를 떠나는 투자자들이 꽤 많다고도 했다.
매입단위는 2백∼1만평.
최소 5천만원의 거액이다.
마음만 맞으면 1백평(2천5백만원)짜리도 팔겠다고 말했다.
실장이 나가자 곧 이사가 들어왔다.
관련내용이 담긴 지역신문을 펼쳐놓고 투자를 권유했다.
정부발표 전 땅을 매입해 놓았기 때문에 싼 값에 토지를 분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를 보이자 최근 계약한 한 투자자의 등기부등본까지 들고 왔다.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19일 오전 정읍시청 도시과에 확인했다.
도시과 관계자는 해당지역에 신시가지를 단계적으로 조성할 계획이지만 토지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인근 부동산에선 수용될 경우 토지가격을 평당 15만∼16만원으로 보고 있었다.
현지에 직접 가서 매입할 경우 최저 평당 23만원에도 해당지역 토지를 구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유명 아파트의 분양현장에서 떴다방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주면 떴다방은 이를 기획부동산에 넘긴다"면서 "기획부동산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