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한국 소설은 너무 느리고 무겁고 부자유스럽다. 소설은 이제 확실히 늙은 장르다.' 천정환씨(서울대 강사)가 문예계간지 '파라 21' 여름호에 기고한 '2000년대의 한국소설 독자'라는 글을 통해 "소위 '책의 시대'를 주도했던 소설이 인터넷 매체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늙은 장르'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씨는 지난해 교보문고의 매출액에서 소설 분야 점유율이 6.7%로 인문 분야의 7.4%보다 낮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그나마 TV프로그램 '느낌표!'가 만든 몇 종의 베스트셀러와 '삼국지' 등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소설은 더 이상 출판시장의 주요 분야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천씨는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젊은 남성작가들"이라며 "독자들의 요구를 따라잡지 못한 구태의연한 장르와 서사구조 등으로 인해 아무도 그들의 소설을 안 읽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소설의 독자층은 아직 잠재적으로 두텁지만 오늘날 한국 독자들은 20세기적 문자문화의 주역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문화적 경험과 소통의 구조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불륜담 등이 주류였던 여성작가들의 소설이 1990년대 말부터 읽히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선 "높은 이혼율과 낮은 출산율이 설명하듯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결혼제도가 뿌리부터 의심받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의식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천씨는 "박완서 황석영 조정래 이문열 등의 소설이 21세기 들어서도 계속 읽히는 것은 '진로 소주''모나미 볼펜'처럼 아주 오래되고 친숙하며 늘 한국적 삶에 조금씩 도움이 된 그런 브랜드들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성공은 1990년대 한국의 젊은 세대가 겪은 이념 상실과 운동의 패배 등에 대한 공감 및 연애소설의 요소 등을 두루 갖춰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독자까지 끌어들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