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일개 보병여단의 이라크 차출 결정이 일파만파로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차출이 궁극적으로 주한 미군의 감축과 철수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안보를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과거 50년동안 미국이라는 안보 우산 속에 안주해온 우리로선 이러한 우려와 불안감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차출이 주한 미군의 부분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철수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한 미군의 차출과 감축이 한·미 동맹과 한국 안보의 기조를 흔들 만큼 부정적 영향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한 미군의 이라크 차출은 현지 상황 변화에 따른 전술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전후 이라크 안정화 작업은 저강도 분쟁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지상군 병력의 추가 증원이 절실하다. 그러나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부시 행정부로선 미 본토 예비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따라서 동맹국들의 추가파병 또는 해외주둔 미군의 차출, 전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동맹국들의 추가 파병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 하에서 미국은 한국 독일 일본 등에 전진배치돼 있는 해외주둔 미군의 차출,전용이라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 미군의 신속기동군화를 표방하는 럼즈펠트 독트린도 크게 작용했다. 이 독트린에 따르면 미 본토의 방어,4개 전장 (동북아, 동남아, 중동, 유럽)에 대한 전진 배치,이중 2개 전장에서의 억지력 구축,그리고 한 개 전장에서의 결정적 승리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군 병력을 한 곳에 붙박이 장처럼 고정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수요에 따라 세계 어느 곳이든 수시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주한 미군의 차출도 럼즈펠트 독트린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차출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와 이라크 현지에서의 전술 환경 변화에 따른 다분히 예상된 행보라 할 수 있다. 이를 한·미동맹의 위상전환 또는 주한 미군의 철수와 연계시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 하겠다. 그리고 일부 우려와는 달리 이번 차출이 안보 공백을 가져 오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 등 한반도에 불안 요인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주한 미군의 일부를 차출한다는 것은 그 만큼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안정적이고 잔여 한·미 연합전력만으로도 대북 군사억제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차출은 보병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미 2사단의 주요 대북억제 자산인 기갑·포병·항공 여단은 그냥 잔류키로 돼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번 차출과 향후 지상군 전력 감축에 대비해 1백10억달러 상당의 전력 증강 예산을 이미 확보해 놓고 있으며 정찰·감시 능력과 지대공 미사일 능력을 크게 강화시키고 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군의 방위 능력이다. 과거 주한미군의 그늘에 갇혀 간과돼 왔지만 한국군의 자체 방어능력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군은 미군 일개 여단의 차출에 따른 전력 공백을 상쇄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남북한 관계의 변화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남과 북은 지난 14차 장관급 회담에서 장성급 회담을 조속히 개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장성급 회담을 계기로 재래식 군사력 부문에 있어 남북한 신뢰구축에 대한 구체적 조치들이 가시화 될 경우, 한반도의 군사긴장은 크게 완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군사위협과 안보 공백에 지나치게 민감해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의 문제는 만성적으로 구조화돼 있는 주한 미군에 대한 심리적 예속에 있다. 이러한 심리적 예속이 한국 안보에 대한 불안감의 확대 재생산을 가져왔고 이는 곧바로 해외 투자자들의 우려를 증폭시켜 왔던 것이다. 이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하고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한국 안보를 조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