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액션영화를 최고로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부턴 제3세계 액션이 영화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토니 자가 주연한 태국의 액션물 "옹박-무에타이의 후예"(감독 프라챠 핀케우)를 보고 이연걸이 한 이 말은 단순한 수사로 치부될 수 없다. 토니 자는 이 영화로 1970년대 이소룡,80년대 성룡,90년대 이연걸을 잇는 동양 무술영화의 액션영웅으로 떠올랐다. 앞선 세 사람이 중국 쿵후의 달인이라면 토니 자는 태국의 고유무예 무에타이의 고수다. 그는 와이어나 리프트 컴퓨터그래픽 등에 의존하지 않고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특출한 '몸의 미학'을 드러냈다. 영화 속에서 그의 무술이 분출한 에너지는 밋밋한 줄거리의 약점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태국의 농촌마을 농푸라우의 사원에서 보물 불상 '옹박'이 도난당하자 사원에서 무에타이를 연마한 청년 팅(토니 자)은 옹박을 찾으러 도시로 와 악당들과 대결한다. 무릎과 팔굽 등을 이용한 팅의 맨손 격투술은 쿵후 스타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기술이다. 싸움에 앞서 머리와 팔을 묶는 모습도 무에타이 고유의 정신수양 의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장터에서 사람들과 상품숲을 가로지르는 추격전과 사람들의 어깨와 머리 위로 뛰어다니는 장면은 흥미롭다. 다른 각도에 배치된 여러 개의 카메라가 격투술을 포착해 슬로 모션으로 재생시키는 방식은 낡았지만 긴박감과 흥미를 한층 고조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팅의 무술이 겸손과 극기 등의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점에서는 다른 동양 무술영화들과 닮았다. 뚜렷한 선악 구도와 일격필살의 권법으로 악을 제압하는 방식도 동양 무술영화의 전통을 계승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태국의 근대화 물결이 가져온 도시와 농촌간 대립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농촌 출신의 팅은 맑고 순수한 청년이지만 방콕 사람들은 타락한 인물들로 묘사된다. 또한 팅의 마을 사람들은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예절을 지키지만 방콕 사람들은 돈을 빼앗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킨다. 옹박을 찾은 팅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농촌 문화가 기계적인 도시 문명보다 나은 삶의 터전임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이같은 도농간의 대립구도는 1970년대 한국 영화들의 화두였다. 청춘코미디 '얄개' 시리즈나 '도시로 간 처녀' 등 호스티스물의 주인공들은 도시의 삶에서 순수를 잃어버린 인물들이었다. 26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