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총리가 각료 임명 제청권 행사를 요구한 노무현 대통령의 '삼고초려'를 끝내 거부한 배경을 놓고 자신의 소신지키기라는 긍정적인 평가 속에 차기 대권도전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 총리는 24일 총리공관에서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과 10분간 만나 노 대통령의 각료 제청권 요구에 대해 사퇴서 제출이라는 '초강경 카드'로 대응했다. 제청권을 고사할 수 있는 가장 강경한 선택을 한 것이다. 고 총리는 이 자리에서 김 실장에게 "헌법상의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 취지에 비춰 물러나는 총리가 신임장관을 임명 제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며 "미안하지만 입장을 바꿀수 없다"고 말했다. 고 총리는 이어 청와대의 추후 설득작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 고 총리는 이날 발표된 보도자료에서 "그동안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공정한 총선관리라는 저의 소임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퇴임 인사를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청와대에 협조적이었고,평소 청와대측과 업무관계로 충돌을 거의 빚지 않았던 고 총리의 이 같은 모습은 상당히 이례적이어서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총리실 관계자들은 고 총리의 이번 제청권 고사를 '원리원칙'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고 총리가 헌법학자,정치인,언론인을 두루 만나 제청권 행사에 대한 의견을 들었고,이들은 한결같이 물러나는 총리의 제청권 행사가 순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참여정부가 표방한 책임총리제의 정신에 따라 고 총리가 국무총리의 헌법상 '권한찾기'를 염두에 두고 대응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고 총리가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총리로서 98년 초 김대중 정부의 조각 때 일부 국무위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각료 제청권을 행사했던 것에도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올해 66세인 그에게 총리직이 사실상 마지막 공직인 만큼 명예로운 은퇴를 위해 고 총리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고 총리가 물러나면서 '소신 총리'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준 것은 차기 대권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의 일환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고 총리가 탄핵정국을 맞아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무리없이 소화해 내 호평을 받은 만큼 노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될 경우 대권주자군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김덕봉 총리 공보수석은 고 총리의 결정과 관련, "어떤 의도나 정치적 배경을 갖고 결정한 게 아니다.순수하게 받아들여 달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형배 기자 k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