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lee@woorisec.com 나는 어릴 적부터 지도보기를 좋아했다. 지도 자체가 흔치 않았던 그 시절,누군가가 두고 간 중학생용 사회과지도는 나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친구이자 바깥 세계를 향한 창이었다. 우리나라를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이렇게 저렇게 비교하기도 하고,각국의 수도와 큰 강,산맥,사막 등을 찾는 재미에 밤새도록 지도를 본 적도 있었다. 대륙별로 국가를 다 암기하거나,미국의 50개주와 그 주도를 맞춰보기도 하고,석유매장지역과 생산국가를 일일이 찾아 익히다 보면 나의 머릿속이 보배와 같은 지식들로 가득가득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 소름이 돋는 희열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즐겁게 알게 된 지식은 학생시절은 물론이고 사회생활을 할 때도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외국,특히 아프리카나 서아시아,동유럽과 중남미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석유는 중동에서만 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쑥스럽게도 상식이 풍부한 인사로 오해(?)받기도 했으니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나처럼 색바랜 지도가 아닌 멋있는 지구본을 책상 위에 사다줘도 크게 흥미를 갖지 않는 듯하다. 물론 아이들마다 선호가 다르고 흥미 대상이 같을 수는 없지만 여러 아이들을 봐도 대체로 그런 경향을 띠는 것은 사실이니,풍요로운 환경과 널려 있는 놀잇감에 기인한 것이리라. 특히 텔레비전과 인터넷은 현란한 눈요깃거리와 게임,엄청난 정보로 아이들을 잡아 끌어당기고 있고,아이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이 새로운 창에 푹 빠져 있다. 중요한 점은 이것들은 사색적 고독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깊은 사유와 존재적 번민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게 한다. 결국 사고(思考)에 미숙한 정신적 장애인이 되지 않나 하는 기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정보의 바다 한가운데를 이리저리 떠다니는 요즘,중요한 것은 이 무수한 정보들을 엮어서 시스템화하는 능력이며,이 능력은 사유하는 습관과 내면의 번민에 익숙할 때 가능한 것이다. 낡아빠진 세계지도를 보면서 가지게 된 여러 상상과 생각들이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정신적 양식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요즘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에서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