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5일 고건 총리의 사표를 신속히 처리하고 개각에 대해서도 범위와 시기를 못박은 것은 난기류 속에 휩싸인 국정을 조기에 다잡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63일간 탄핵 칩거에서 벗어나 집권2기의 새출발을 다짐한 상황에서 장관 3명을 교체하는 일조차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면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다시 흔들릴 조짐을 보이는 형국이다. 더구나 교체 장관직을 놓고 여당 실세들의 힘겨루기는 수위를 넘어서면서 계속 삐걱거리고 있다. 특히 김근태 전 원내대표 진영에선 특정 장관자리를 놓고 집단행동 기미마저 보이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일각에선 민생과 경제 챙기기,시장과 공공개혁 등이 모두 구두선으로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9분간에 걸쳐 개각의 배경과 방향에 대해 길게 설명한 뒤 "개각에 거론되지 않은 여타 장관들은 변동이 없으니 부처가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고 직무에 충실해 달라"고 요청한 배경이기도 하다. 문제는 명령계통이 확실한 편인 행정부처와 달리 여당쪽에도 노 대통령의 조기수습 의지가 충분히 반영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뜩이나 자기 주장이 강한 집단인데다 노 대통령은 이전처럼 집권여당의 총재가 아니라 명예직인 '수석당원'에 그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원만한 집권2기의 출발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조기에 국정쇄신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와 관련,청와대측은 "위헌·위법시비를 아예 차단하기 위해 총리도 서리체제가 아닌 부총리의 직무대행으로 간다"며 일단 각 분야별 로드맵에 따른 안정적인 국정운영 의지를 강조했다. '김혁규 총리 내정'에 대해서도 "총리 적임자라는 게 노 대통령의 판단이며,보궐 선거와도 무관한 인사"라고 말해 현 단계에서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나라당과 민노당이 반대하지만 김혁규 카드로 정면돌파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들어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반대기류가 형성되고 있어 노 대통령의 최종 결심이 주목된다. 후임 총리 지명에 며칠 시간적 여유를 갖기로 한데는 6·5재보궐 선거일정 외에 이같은 정치권의 사정도 감안된 것 같다. 2개월간의 대통령 권한대행에 이어 1개월 가량의 총리 직무대행 체제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노 대통령은 현재의 국정상황에 대해 '법규에 따르되 속전속결로 풀어나간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지만 후임 총리 인준,정동영·김근태·정동채 의원 등의 특정부처 장관후보 내정,민생현안 챙기기 등이 겹쳐 내우외환이다. 한편 노 대통령은 3개 부처 외에 대해서는 "중간에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상의하자"고 말해 사정이 생기면 그때그때 장관을 교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