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각 추진과정에서 자리다툼을 벌여온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형국이다. 고건 전 총리의 제청거부로 개각이 연기된 것이지만 두 사람의 파워게임이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는 책임론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동시 입각통고→자리다툼→조기 개각추진→총리의 제청거부→조기 개각무산이라는 파행을 겪은 이번 사태는 애당초 총선 직후 불붙은 두 사람의 과도한 차기 경쟁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다. 두 사람은 차기를 의식해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고 이는 대권레이스의 조기 점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탄핵정국을 극복하고 '힘있는 대통령'으로 복귀하려던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용인키 어려웠고 결국 서둘러 두 사람에게 입각을 통고했다. 노 대통령은 25일 "사전에 통고해야 당과 국회직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정과 편의를 봐서 귀띔했는데 그게 보도됐다"고 이를 확인했다. 입각통고가 언론에 흘러나가면서 곧바로 두 사람간의 통일부 장관 자리다툼으로 비화됐다. 4월 말만 해도 김 전 대표의 통일부 장관 기용이 유력한 분위기였으나 5월 중순에 '정동영 통일,김근태 복지부 장관' 구도로 기울면서 양측간의 알력은 한층 심화됐다. 이같은 다툼으로 '대권준비용 개각'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던 여권핵심은 조기개각을 결심했다. 내달 말로 예정됐던 개각을 한달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떠나는 총리의 제청이라는 편법을 시도하다가 고 전 총리의 버티기로 낭패를 본 것이다. 총선 승리의 주역인 여당의 두 지도자가 한순간에 여권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됐다. 차기 주자로서의 상처도 적지 않다. 급기야 양측 일각에서는 "입각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정 전 의장측),"복지부 장관을 할 바에야 차라리 백의종군하라"(김 전 대표측)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