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의 무리한 대북지원 의욕이 자칫 남북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24일부터 이틀간 금강산에서 열린 제4차 남북 적십자실무접촉에서 북측이평양 동대원구역에 위치한 조선적십자병원의 현대화 및 심장센터 건립, 식량 10만t등의 지원을 요청하면서 10차 이산가족상봉과 연계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적십자간 접촉에서는 이산가족 상봉행사 문제만을 주로 논의하는 것이 사실상 관례로 굳어져 왔다. 북측이 당연하게 상봉을 논의하는 적십자간 접촉에서 대북지원을 이유로 행사를무산시킨 것은 아주 이례적인 경우여서 정부와 한적은 그야말로 곤혹스런 표정이다. 한적은 지난 14일 10차 이산가족 상봉을 다음달 19∼24일 금강산에서 실시하자고 북측에 제의한 뒤 상봉 후보자 300명을 선정하고 건강검진까지 마쳤다. 그러나 이번 접촉에서 상봉날짜가 확정되지 않아 후보자 200명 선정 등 차후 일정이 중단된 상태다. 북측은 특히 이번 접촉에서 적십자병원 현대화와 심장센터 건립 지원은 한적 전.현직 총재들과 약속이라며 심장센터 부지 준비도 끝낸 만큼 이를 적십자간 합의서로못박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은 "적십자간 접촉에서는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주력해야 한다"며 "북측이요청한 사항은 한적의 능력이 닿는 범위에서 지원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설득했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이병웅 한적 총재특보는 27일 "적십자병원의 현대화는 남측의 중고장비 등을 지원하면 되지만 심장센터는 필요 장비구입에만 3천만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적의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북측의 요구가 지나치게 방대하다"고 털어놓았다. 한적의 한 관계자는 "이윤구 총재가 지난 4월 방북 때 북측의 지원요청에 '알았다'고 답변한 것에 대해 북측은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며 "남북한의 용어차이로 빚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북측 요구가 전.현직 한적 총재들의 지나친 대북지원 의욕에서시작돼 충분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졌다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한적 내부에서도 전.현직 총재들이 혈액사업 등 중요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방북 및 대북지원 문제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써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 총재의 경우 취임 직후부터 줄곧 판문점 연락관 접촉 등을 통해 북측에 총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방북시 의약품을지원하고 적십자병원에 대한 지원을 논의하자고 자청했다. 이에 북측은 '얼마나 많이 가져오려고 하는가'는 식으로 '기대 반 의심 반'의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또 이 총재는 방북 전부터 정주영 전 현대회장의 소떼 방북처럼 의약품을 트럭에 싣고 육로로 방북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언론 인터뷰 때마다 피력하기도 했으며제9차 이산가족 상봉 때는 단장 자격이 아닌 참관인 자격으로 금강산 상봉현장을 방문해 순서에도 없는 만찬사를 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계속 이어져야만 하는 사업"이라고전제한 뒤 "하지만 재원이나 추진방법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이뤄지는 지원약속은 오히려 남북관계를 어렵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한국인들이 중국 조선족 동포를 상대로 각종 사업에 대한 공수표를남발했던 것이 결국 반한감정으로 이어졌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자칫 남북관계 진전속에서 무리한 대북지원약속이 남북관계 악화나 반남(反南)감정을 야기할 수 있다고경계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한적이 룡천참사 등을 계기로 북측의 아픔을 돕기 위해 각종지원사업을 펼쳤음에도 북측이 상봉행사를 조건으로 또 다른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기자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