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느림의 미학 .. 김동근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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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kim1127@kicox.or.kr
요즘 들어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웰빙(well-being)'이란 새로운 문화코드가 우리사회 전반에 거센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는 웰빙은 인스턴트 식품과 패스트푸드로 인해 잃어버린 미각을 되찾고 전통음식을 보존하자는 '슬로푸드' 운동으로 다시 확산되고,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교외에서 느리게 사는 '다운시프트족(族)'이라는 또 하나의 유행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다운시프트(down-shift)'는 고속으로 주행하던 자동차를 저속기어로 변환한다는 뜻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삶의 기어를 저단으로 바꿔 여가를 즐기며 느리게 사는 생활방식을 갖자는 말이다.
이런 삶은 얼핏 속도경쟁에서 도태된 모습으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건강한 육체와 정신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시사하는 우화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남들보다 빨리,먼저 해야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는 속담처럼 속도를 내어 빨리 처리하려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끔 친구들과 마라톤대회에 나가서 뛰어보면 초반에 스피드를 내다가 오래 달리지 못하고 중도에 지쳐 포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마라톤의 가장 가치 있는 목표임을 이해하지 못한 초보 선수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다.
한 알의 밀알이 부풀어 빵이 되려면 발효 시간이 필요하다.
모름지기 세상일이란 가속으로 달려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저속으로 바꿔 느긋하게 사는 여유를 부릴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에 쫓기 듯이 앞만 보고 내달리는 이른바 속도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네 삶도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음식을 먹는 일이나 여가를 즐기는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을 배우며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즐기는 자세로 살아가노라면 삶이 한층 더 풍요롭고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