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투자 계획의 현실성..金榮奉 <중앙대 경제학 교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아침에 깨어나니 유명해진 자신을 발견했네."
1812년 어느 아침 시인 바이런이 놀랐듯 사람들은 지난 주말 갑자기 벌떡 일어선 한국경제에 놀랐을 것이다.
삼성 LG SK 현대차 등 4대 재벌기업이 이제 '공격투자'에 나서기로 했단다. 향후 3∼5년간 1백46조원을 투자하고 금년에 3만6천5백명을 새로 뽑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증권시장도 같이 뛰었다.
때맞춰 노무현 대통령은 연세대 특강에서 "경제는 내가 있는 동안 문제없다"고 장담했다.
"누가 경제위기를, 어떻게 불안을 조성해도 나와 경제팀이 면밀히 검토하고 따져 의연히 지켜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살아날 경제를 재계는 왜 그 동안 방치했나.
지난 주초 대통령과의 회동 직후 4사의 투자고용 계획이 나왔고 그 취지도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동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장에서는 죽는다던 투자고용을 대통령이 한번 움직여 살려놓았으니 과연 노 대통령은 위대한 선지자, 불굴의 지도자이다.
우리는 시장이 필요 없다.
재계는 위기를 조성하던 수구였음이 또 한번 증명됐다.
어떤 계기로든 경제가 활성화되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4사의 이번 계획은 어떤 진실을 내포하는가.
대통령과 재계는 작년 6월에도 삼계탕 집에서 만났고 그때도 같은 투자약속을 했다.
그 뒤 기업투자는 살아났는가? 이런 전례를 또 되풀이한다면 늑대가 왔음을 외치던 양치기소년처럼 국민의 대 기업신뢰는 실추될 것이 뻔하다.기업이 신뢰를 잃으면 시장이 신뢰를 잃는다.
필자는 이번 4사 투자계획의 실체를 알고 싶다.이른바 세계적 기업이란 이들이 철저한 조사,검증과 의사결정 과정없이 수조원의 투자사업을 오직 대통령께 선물하고자 급조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시장은 오직 기업의 경쟁력과 위험도만 따지지,'대한민국 경제를 살리자'는 애국적 투자라고 봐주지 않는다. 실제 그런 투자라면 이들 기업은 망하고 한국경제는 오히려 거덜난다.이것이 향후 이행할 의도가 없는 전시용이라면 대통령과 국민을 조롱하는 처사다. 개혁정부에 밉보이지 않으려는 보험비용이라면 과거 정경유착 시대를 능가하는 정치작태이고 국민이 뒤처리할 비용이다. 원래 있던 것인데 대통령께 잘 보이고자 아직까지 집행 안한 것이라면 불황 실업에 허덕이는 국민 따위는 초개(草芥)처럼 본 악덕기업의 배신행위다.
투자는 기업이 숨쉬듯 상시 계획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만날 때 특히 투자 보따리를 여는 관례는 기업에나 국가경제에나 도움이 될 리 없다. 제대로 이행 못하면 대통령과 국민께 허언(虛言)을 한 것이 되고, 효과를 보면 정부의 명령 행태에 자신감을 실어주는 것이다.
"기업은 징징 우는 기득권자이고 정부야말로 기업의 보따리를 풀게 하는 백기사(白騎士)"라는 반(反)시장적 국민 기업의식은 이런데서 번식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경제인가.
오늘날 학벌을 타파하고 똑같이 기회를 나누자는 여론이 전국에 불타오른다.
노동의 경영참여와 기업의 사회기여분담금은 이제 당연한 주장이 됐다.
국민의 90%가 기업의 목적이 근로자 복지향상이고 이윤의 사회환원이라고 한다.
엊그제도 대통령은 일자리는 노력중이고 지식서비스 산업 육성은 내가 직접 진두 지휘하니 좀 기다리라고 했다.
기업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런 현실은 따져보면 기업의 자업자득이다.지킬 것 많은 한국의 보수계층은 원래 권력에 약하고 소극적이었다. 특히 재계는 과거 정경유착의 유산으로 약점 잡힌 데가 많아 정권의 눈치만 봐왔다.
반면에 진보 집단은 도박적 전투적이었다. 노 대통령 스스로 그의 첫째 성공 비결이 승부를 걸어야할 때 인생을 도박했음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양자간 어떤 승부가 날지는 뻔한 일이다.
오늘날 한국의 시장자본주의는 고사(枯死)위기에 처해있다.시장은 정권에 협력함을 생존 수단으로 삼는 재계 회장단의 사유물이 아니다. 그들이 책임있는 한국 기업의 대표라면 모처럼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새 정권아래 조성된 반기업 정서 반시장 풍토를 직언하고 백해무익의 보따리 풀기는 이제 그만두겠다고 말해야 했다.
만약 내년에도 경기가 안 좋으면 또 투자보따리를 열 것인가.
이들에게 묻고 싶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