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경제장관들의 침묵 ..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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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노동부 공무원들이 일할 맛 난 적도 아마 없었을 게다.
DJ정권때만 해도 노사간에 입장이 엇갈리는 민감한 이슈에 대해선 경제부처의 반대에 밀려 번번이 뜻을 접어야 했다.
노동계라는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었지만 정부 내 지원군이 없다 보니 부처협의 과정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외국인 고용허가제만 해도 이미 93년 이후 불법체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노동부가 내놓았던 단골메뉴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번번이 경제부처들의 현실론에 밀려 10년 동안이나 책상서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1년이 지나면서 세상은 정말로 많이 변했다.
분배와 복지를 내세운 정권이어서 그런지 정부 부처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노동부의 정책들이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먹혀들고 있다.
부처협의과정에서 의견충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정책이 백지화되는 사례는 거의 없어졌다.
지난 18일 국무회의도 마찬가지였다.
탄핵기각 결정 후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주재한 이날 국무회의에는 우리 사회 최대 논쟁거리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의제로 올랐다.
민간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경제부처들이 줄곧 강력한 반대입장을 표명해 왔던 사안이다.
노동부 스스로도 국무회의 하루 전인 17일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관계부처 간 이견이 조율되지 않아 이번 국무회의에서는 확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노동부의 비정규직 대책이 다른 경제부처의 별다른 저항 없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노동부 고위관계자는 "당초 반대논리를 펼 것으로 예상했던 이헌재 재경부장관이 입을 닫아줘 고맙게 생각했다"며 국무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3월23일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한 관계장관회의 때만 해도 이헌재 부총리를 비롯 참석자 대부분이 경제논리를 앞세우며 거세게 반대했던 사안이었다.
그런데 두달이 채 안돼 열린 국무회의에서 경제부처 장관들은 꿀먹은 벙어리였다.
그동안 부처간 조율을 통해 대책 내용이 다소 조정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핵심 사항들은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던 터였다.
경제부처 장관들의 침묵은 어느 정도 이해가는 대목도 있다.
노 대통령이 복귀하면서 곧바로 "개혁 원칙에 변함없다"는 담화까지 선포한 마당에 그것도 바로 면전에서 경제논리를 앞세워 반대 견해를 내놓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재계 총수들과 만나 언론이나 경제단체가 개혁을 저지하고 정책을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기 위해 '실체 없는 위기론'을 조장하고 있다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개혁에 반하는 행동은 자제해 달라는 경고성 발언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장관들에게 소신을 기대한다는 건 어찌 보면 욕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업경영과 노동시장에 파급효과가 큰 민감한 정책들에 대해 경제부처 장관들이 먼산 바라보듯 하며 할 얘기를 안 한다면 이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재계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대한상의 한국경총 등 경영단체들도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은 성명서 한장 내놓지 않고 아예 입을 닫아 걸었다.
괜스레 반대 목소리를 내놨다 '괘씸죄'에 걸리느니 차라리 조용히 있겠다는 심사로 비쳐진다.
참여정부가 사회통합과 균형발전이란 이름 아래 추진하는 분배정책에 제동을 걸 주체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