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암 스님이 하루는 "중 승(僧)자를 쓸 줄 아느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사람 인(人)에 일찍 증(曾)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틀렸다"고 해요.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중(僧)이란 중(衆.무리)이므로 화합하고 세속의 욕심을 초월해야 하는데 사람도 못되는 것이 중이 돼서야 쓰겠느냐는 말씀이셨지요." 불교계의 여름 집중 수행기간인 하안거(夏安居)를 하루 앞둔 1일 저녁 전남 장성 고불(古佛)총림 백양사 설선당.지난해 말 입적한 서옹 전 조계종 종정에 이어 방장에 추대돼 총림을 이끌고 있는 수산(壽山) 지종(知宗·82) 스님은 이렇게 사람의 도리부터 강조했다. "개혁이다,정화다 하지만 내 마음부터 정화해야 세상이 깨끗해집니다. 그건 승속을 막론하고 똑같아요. 잠자리에 들기 전 가슴에 손을 얹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 한 번 되새겨보세요." 1922년 장성에서 태어나 38년 법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조계종 원로의원과 불갑사 조실을 역임한 수산 스님은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며 "저 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짓밟고 다퉈서야 쓰겠느냐"고 개탄한다. "부처님 법은 올바른 사람이 되어라는 것인데,말만 앞세우고 실행이 없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언행일체가 돼야 하거든요. 각자의 마음자리를 바로잡아 엉뚱한 데로 새지 않도록 점검하면서 올바르게 수행해야 참사람이 될 수 있어요." 참사람이란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상하(上下)와 범성(凡聖)을 초월해 자유자재하며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간의 참모습이다. 수좌들이 자나깨나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것도 결국 참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방장으로서는 처음 맞게 된 수좌들을 어떻게 지도하겠느냐고 묻자 노장은 "대학 가도록 수학을 가르칠까,영어를 가르칠까"라고 농담처럼 반문한다. 화두와 내가 하나 되지 않는다면 천날만날 선방에 앉아 있어도 허송세월만 하는 것이라는 경책이다. 예로부터 선지식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유명한 백양사에는 납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선원에 방부(房付·안거 신청서)를 들이려면 여러 해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다. 이번 하안거에는 운문선원에 16명,고불선원에 6명 등 22명이 방부를 들였고,비구니 암자인 천진암에서도 10여명의 스님이 안거 정진에 돌입했다. 이들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오후 9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 10시간 이상씩 정진하게 된다. 2일 오전 10시 백양사 대웅전에서 열린 하안거 결제법회에서 수산 스님은 "맨손으로 한 칼을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라며 화두 타파를 위해 정진을 거듭할 것을 당부했다. 이날 백양사 뿐만 아니라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등 전국의 선원과 암자 등에서 2천5백여명의 수좌들이 3개월간의 하안거에 들어갔다. 장성=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