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요즘…] '달라진 예산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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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소관 부처에서 예산을 배분하는 톱 다운(Top-down) 방식이라서…."
최근 기획예산처의 한 간부는 지방 국립대로부터 병원 건물을 증축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무시못할 유력 인사의 이름도 거론됐다.
예전 같으면 예산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겠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톱 다운 방식으로 이미 각 부처의 예산한도를 정해 줬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는 말로 실랑이는 끝.
해당 부처에 가서 알아보라는 얘기다.
'톱 다운' 방식이란 예산처는 각 부처가 사용할 수 있는 예산한도만 설정하고 세부적인 배분계획은 해당 부처가 알아서 짜는 '총액배분 자율편성제도'를 말한다.
지난해까지는 각 부처의 예산 요구안을 예산처가 일일이 심의ㆍ확정함으로써 민원의 표적이 됐었다.
올해부터 예산 배정방식이 '톱 다운'으로 바뀌면서 '예산시즌'을 맞은 예산처의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우선 예산처 청사(서울 반포동) 주차장이 한산해졌다.
예년 이맘 때면 예산 민원인(주로 공무원)들로 가뜩이나 비좁은 주차공간이 늘 북적거렸다.
청사 정문에 진을 치고 예산지원을 요구하던 이른바 '꽹과리부대'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예산처 관계자는 "요즘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 각 기관 예산담당자들과 마주쳐도 이름이 가물가물할 정도"라고 말했다.
예산처 사람들이 이처럼 한숨을 돌리는 대신, 예산관련 '고민 보따리'는 예산편성업무를 담당하는 각 부처 기획관리실 몫으로 떨어졌다.
각 실ㆍ국이나 유관기관들의 끈질긴 예산지원 요구를 설득하고 조정하느라 각 부처 기획관리실장들이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이같은 고민은 지난 달 31일 예산처가 각 부처별 예산요구안을 마감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대부분 부처가 마감시한에 임박해 예산안을 제출했고 일부 부처는 시간을 더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예산처는 이번에 접수된 각 부처별 예산안에 꼭 들어가야 할 국정과제가 빠져있지는 않은지, 법정경비는 모두 포함됐는지, 부처간 중복사업은 없는지 등을 살핀 뒤 오는 9월말까지 예산안을 확정하게 된다.
예산처 간부는 "과거에는 각 부처의 요구사항이 예산처로 몰리는 바람에 국회가 열리는 10월까지는 정말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다"며 "이제는 예산 편성권한이 원칙적으로 각 부처로 내려간 만큼 올해는 예산실 직원들이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