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입으로 실타래를 토해내고 선인장 잎엔 형형색색의 핀이 꽂혀 있다. 그런가 하면 알코올 램프 위엔 썩어가는 과일이 놓여 있다. 서울 관훈동 갤러리아트사이드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정혜진씨(46)의 사진·오브제는 전혀 상관없는 대상들을 서로 묶고 꿰매고 엮은 작품들이다. '피해자 & 가해자'라는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작가는 작품 재료에 피해를 주는 가해자이고 재료는 피해자다. 이질적인 대상의 결합이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지만 정씨는 부조화 속에서 조화를 강요한다. 예컨대 선인장 잎에 꽂힌 핀들은 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돋아난 일종의 '돌연변이'로 현대 산업사회의 가치관을 은유적으로 꼬집는다. 이화여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전공한 정씨는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 베르사유'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샤머니즘 같은 전통 소재를 생체공학적 기법과 결합시켜 작품을 제작하는 특이한 작가다. 그는 "첨단 과학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신체 욕망 같은 일반적인 모티브가 아니라 생물학적 실험을 통해 기관(organic)이 '제3의 신체'로 거듭나는 미래의 새로운 미적 가치를 탐구하는 게 그의 관심거리다. 15일까지.(02)725-1020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