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영화의 경쟁력 .. 文輝昌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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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국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30% 정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일본 프랑스 정도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현재 50%를 훨씬 넘고 있어 최소한 국내에서는 미국영화를 압도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영화는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감독상을 따냈던 한국영화는 이제 3대 영화제 중 최고인 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함으로써 국제적인 위상을 떨쳤다.
이렇게 비교적 단시일 내에 높아진 한국영화의 경쟁력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영화 제작자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올드보이' 등은 액션과 스릴면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다를 바 없다.
혹자는 모방은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이 아니라고 하나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1등을 잘 모방하면 2등은 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1등,우리 영화가 2등,그리고 일본 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의 영화가 3등 이하가 된다면 좋지 않은가.
모방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엉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홍콩 무술영화의 몰락이다.
이소룡 영화에서는 필요한 경우 적절하면서 정교하게 할리우드 스타일을 도입했었는 데 그 후 쏟아져 나온 많은 무술영화는 할리우드 스타일을 필요 이상으로 엉성하게 모방했기 때문에 영화 관람객들이 식상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잘만 한다면 모방 그 자체는 경쟁력을 높이는 제1차적 전략인 것이다.
'올드보이'의 원작이 일본만화라고 주장하며 한국영화의 독창성 부족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걱정할 것 없다.
일본만화에서 일부 힌트를 얻은 것이지 영화 전체가 모방이라고 볼 수 없다.
모방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모방은 중요한 학습과정이며 창조의 어머니다.
독창성은 깊은 산속에서 혼자 연구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최고'를 잘 연구해 그것에 '플러스 알파'를 하는 것이다.
모방과 경쟁력과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산업의 예를 들어보자.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대형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모방해 개인용 컴퓨터에 사용할 수 있는 도스시스템을 개발했다.
또한 경쟁사인 애플컴퓨터가 그래픽 모드의 화면을 만들어 내자 빌 게이츠는 다시 이를 모방해 윈도 시스템을 내놓게 된다.
컴퓨터 하드웨어 시장에서도 초기에 IBM과 애플컴퓨터가 경쟁하고 있었는데, 애플컴퓨터의 하드웨어가 뛰어나다고 판단한 IBM은 과감히 자사 컴퓨터의 설계도면을 공개해 다른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무료로 모방을 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IBM식 컴퓨터를 업계의 표준으로 만들어 시장점유율을 압도하게 된다.
다시 영화산업으로 돌아오자.지금까지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영화의 경쟁력 원천은 '할리우드 스타일의 모방'인데 이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갖고 있다.
기존 한국영화 제작자들은 경쟁력 원천을 '한국적 정취'에서 찾으려고 했던 반면 최근의 성공적인 제작자들은 이를 '국제적 표준'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경쟁력 방정식이 달라진 것이다.
'한국적 정취'전략은 호기심 있는 일부 관객을 끌어들여 성공할 수 있긴 해도 블록버스터의 대히트작을 만들기는 어렵다.
국내외 시장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이기려면 '국제적 표준'위에 '한국적 정취'를 담아야 한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기 스타일만 고집할 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 것을 수용하고 필요하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주로 미국과 유럽 중심이었던 칸 영화제에서 이번에는 아시아 영화가 수상을 많이 했다.
한국영화가 심사위원 대상,일본영화가 남우주연상, 프랑스 영화이지만 홍콩 출신 여배우가 여우주연상,그리고 태국영화도 심사위원상을 공동 수상했다.
한국영화뿐 아니라 칸 영화제도 열린 마음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cmoo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