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투자하는 사교육비는 연간 14조원에 달한다. 실로 천문학적인 액수다. 외환위기 이후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상황을 감안한다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같은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은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은 물론 계층간의 격차를 심화시켜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 더욱이 공교육의 위상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그 자리의 상당부분을 사교육이 대신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월17일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했다. EBS 수능강의 확대,수준별 보충학습 시행,특기·적성교육 활성화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각종 사교육을 학교로 끌어들여 사교육비를 줄여보겠다는 의도에서였다.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4월1일 EBS 수능강의가 처음으로 방송됐다. 교육 관계자,학부모,학생 등 많은 이들의 관심속에 두달째를 맞는 수능강의는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 감소측면에서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수능강의 이후 사교육비 지출이 방송 전 월평균 23만7천원에서 19만원으로 줄어 약 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5년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 또 수능강의 방송으로 연간 6천8백억원의 사교육비 절감효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특히 서울과 인천·경기 등 수도권의 사교육비 감소율이 15% 내외에 그친 반면 충청·전라 등 지방에서는 30∼40%나 줄어 더욱 컸다. 수능강의가 지방과 저소득층의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인 것으로 증명된 셈이다. 상위권 학생들보다 중위권 학생들에게,수도권보다는 지방에서 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사교육의 기회가 적은 지방 학생들에게 유효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EBS 수능강의의 확대 실시는 화상을 통한 학습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한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계층 및 지역간 격차를 상당한 정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에 대한 열풍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명문대학 선호도에 의해 생겨난 현상이다. 이러한 명문대 선호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다를 바 없다. 수능성적이 좋아야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 수험생들은 수능 점수를 올리기 위해 학원과외를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유아기부터 지속되는 과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수능을 앞두고 한번 받는 과외이며 따라서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대학 재수생인 경우 학원비가 약 57만원 정도이며,일반가정의 사교육비 부담은 별로 크지 않다. 중·고교를 거쳐 평범한 대학에 가는 경우 과외교육은 대개 초등학교 때 음악 미술 등 취미활동에 그치며,과외비용은 월 8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사교육비 절감차원에서 실시되는 EBS 수능방송의 성공여부를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전국 모의고사가 실시된 지난 2일은 수능방송이 첫 평가를 받은 날이다. 학교의 학원화 등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보면 당초 교육부가 의도한 기대에 부합하는 듯하다. EBS 수능 강의 실시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사교육비 경감대책 1백일을 맞아 후속대책이 제시됐다. 이와 함께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중장기 대책으로 학벌주의 극복,대학 서열구조 완화,학부모 의식개선 등이 포함됐다. 요컨대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지속적인 추진은 비정상화돼 가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바로 잡으며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여건,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