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전자장난감이 있다. 일본 반다이사에서 만든 다마곳치가 그것.스위치를 켜면 알이 부화돼 하루 지나면 아기곳치,4∼5일이면 어른곳치로 변신하고 간혹 돌연변이도 등장하는데 대소변 뒷바라지 등 진짜 애완동물처럼 키울 수 있어 아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키우고 보살피는 일이 가져다주는 충족감 때문일까,사람 사이의 소통 부족 탓일까. IMF 이후 경기 회복과 더불어 국내엔 애견 돌풍이 불었다. 털 날리고,오줌 똥 누고,짖어서 시끄러운데도 강아지를 키우는 가정이 폭증했다. 동물병원 애견용품점 애견미용실이 늘어난 건 물론 집에 있는 강아지를 밖에서 돌보는 원격시스템까지 개발됐다. 그러나 불황의 여파인지 유행 퇴조인지 들불처럼 번지던 애견 붐이 수그러들고 애완용 곤충이 뜬다는 소식이다. 강아지 분양은 줄어들고 대신 장수풍뎅이 사슴벌레같은 곤충 판매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이나 유리 상자에 넣고 과일조각이나 젤리 등을 줘 키우는데 전국의 동호인만 10만여명에 달하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징그러운 벌레로 여겨지던 곤충이 애완용으로 떠오른 건 강아지에 비해 값이 싼 데다 냄새나 소음이 없고 먹이 병원비 등 키우는 데 따른 부담도 적어서라고 한다. 1년이면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 전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많은 이들이 강아지를 키우면서 "어학연수 보내달라,옷 사달라,용돈 더 달라 등 온갖 요구를 하면서도 막상 부모가 돌아왔을 때 쳐다보지도 않는 자식보다 문 앞까지 달려나와 펄쩍 뛰어오르며 반기는 강아지가 낫다"고 한다는 얘기가 있다. 풍뎅이나 사슴벌레도 길들이면 어떤 식으로든 주인에게 반응할지 어떨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도 기르는 동안 생명의 신비,관심과 보살핌의 힘을 느끼면 삭막하고 고단한 세상의 강을 건너는 데 좋은 방편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개나 곤충에게 정을 쏟는 건 아무래도 외로워서가 아닐까. 곤충을 통해서라도 쓸쓸함을 달래고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다면 좋긴 하겠지만,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과 얘기하고 손도 맞잡고 어깨를 두드리는 것만 할까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