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난옥 < 현암사 대표 ok@hyeonamsa.com > 경운기가 털털거리며 달리는 길을 뒤따라가다 보면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던 비포장 신작로는 이제 거의 없어졌고 번듯한 포장도로가 전국 방방곡곡 잘 닦여 자동차로 못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러기 전까지만 해도 길 따라 어우러지는 풍경엔 그래도 우리만의 뭔가가 있었다. 짧은 식견으로 보아 이런 데는 임도도 아니고 동네 길도 아닌데 길이 왜 있어야 하나 싶은 데까지 길은 정말 잘 닦였는데,그 길을 깊이 따라가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 예보다 더 초라하고 군색하다. 우리만의 주거문화나 우리만의 멋이 다 사라져 버렸다. 삶의 터전을 가꾸고 지킬 만한 젊은이들은 거의 다 대처로 떠나고 허리 꼬부라진 노인들만 고향을 지키며 겨우겨우 살아가니 한몸 건사하기 힘든 분들도 많아 문화를 가꾸고 간수하는 일 같은 건 거의 방치해놓고 사는지 모른다. 요즘 어느 지방 할 것 없이 관광산업 육성이 살 길이라고 권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행지가 되려면 상품성,즉 여느 상품과 마찬가지로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어떤 상품이든 경쟁력을 갖추려면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천편일률적인 문화로 경쟁력이 있을 수는 없다. 관광객은 기필코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보려 한다. 없는 경쟁력을 마구 강조해 선전하면 한번은 들르더라도 두 번은 가지 않는다. 소비자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 소비자가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것을 보기 위해 돈 쓰고 시간 쓰고 하겠는가. 요즘 '관광'에 맛들인 우리 또래 사람들은 고향엘 한번씩 다녀오면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우리가 사는 집에 한국적인 것이 없어져서 안타깝다고.고향을 떠나기 전에 보았던 것들이 그립기만한데 그 흔하디 흔하던,흥부네 박 덩굴 뒹굴던 그 초가지붕과 칠흑같은 어둠에 기대 전설을 꿈꾸던 기와지붕은 어디로 다 팽개쳐 버리고 하루아침에 개량된 슬레이트지붕 투성이냐고.그 멋진 지붕에 우리의 미학이 서린 우리의 색은 다 사라지고 우리 산하에 어울리기 민망한 진한 원색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느냐고.돌담길 모퉁이 돌아 사립짝 들어서면 어머니 목소리 다정하게 들릴 듯한 그 길은 어디 가고 포장도로만 이렇게 많아졌냐고.오랜만에 찾은 고향집에서 기대하는 것은 새 것이 아니다. 낡았지만 오래 묵은 것들.거기서 우리의 미학을 세우고 아름다움을 재발견할 때 관광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