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상생방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탄탄한 자금력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협력업체들을 동반하지 않고선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서다. 이에 따라 자금지원은 물론 기술과 인력 등을 망라하는 전방위 지원에 나서는 대기업들이 늘고 있다. 아직은 양측간 입장차로 인해 상호 불신의 벽이 여전히 남아 있는 가운데 공동운명체 인식이 확산되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재계는 해석하고 있다. ◆"협력업체는 내 식구"=주요 대기업들은 올들어 과거 어느 때보다 풍성한 협력회사 지원보따리를 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4년을 협력회사와 함께 성장 발전하는 상생경영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총 1조원 규모를 지원키로 했다. LG전자는 협력회사에 대한 '6대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현대자동차는 협력업체의 기술 및 품질발전이 곧 완성차 업체의 경쟁력 확보로 이어진다고 보고 매년 1조6천억원의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나눔경영의 '질'도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SK텔레콤은 협력업체들과의 협력을 '혁신'대상으로 규정,과거 20년간 축적한 기술을 협력업체에 전수하는 등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로까지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LG전선은 '전자결제시스템'을 도입,협력업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어음결제를 없앴으며,각종 불만 및 건의사항을 쏟아낼 수 있도록 회사 홈페이지에 '사이버 신문고'를 개설하기도 했다. 정부도 노무현 대통령이 기존 노·사·정 3자대화의 테이블에 중소기업을 포함시킬 것을 제안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내보이고 있다. ◆허물어야 할 불신의 벽=최근 발표된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자료를 비교해 보면 대기업과 협력사 간 불신이 아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월 전경련은 대기업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하도급 거래의 공정화가 정착단계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대표적 사례가 응답업체의 68%가 납품단가를 합리적으로 책정하고 있다고 답했다는 것. 하지만 한 달 뒤 나온 기협중앙회 설문조사에선 중소협력업체들의 불만이 납품단가에 가장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업체의 57.5%가 "거래 대기업이 매년 단가인하를 요구하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는 지난 2002년 43.2%보다 훨씬 올라간 수치다. 특히 중소협력업체의 91.2%(2002년 85.7%)가 '거래단절 등이 걱정돼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행위를 그냥 참았다'고 응답했다. 대기업은 또 협력회사의 '기술 및 품질수준 미흡'이 주된 애로사항(응답자의 42.9%)인 반면,중소기업은 하도급거래에 대한 '정부의 직권조사 확대실시'(48.5%)에 주안점을 두는 등 관심사항도 서로 거리가 멀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공동운명체 다행스럽게도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관계가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 협력업체의 고질적 애로사항인 납품대금 결제문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기협중앙회 설문조사 결과 중소협력업체가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어음의 지급기일은 크게 줄었다. 현금결제 비중도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경련 설문조사에서 대기업들도 협력회사 지원프로그램이 '충분하다'고 응답(15.6%)한 기업보다는 '보통이다'(66.7%) 또는 '(매우)부족하다'(16.3%)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우세,지원확대나 협력증진 과제가 남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양측이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즉 대기업 측면에선 하도급거래를 더욱 공정화하고 협력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중소기업도 품질향상이나 신제품 개발능력 등 거래 대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동반발전해야 한다고 재계는 지적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