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경제 위기론은 음모? .. 정규재 <경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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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초보자에게 주가는 왜 그다지도 죽 끓듯 오르내리는지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번번이 예상을 벗어나는 주가는 노련한 투자자조차 당혹스럽게 만들고 만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주가는 누군가의 작전에 의해 움직인다는 소위 음모론이다.
주식마다 임자가 있고,시쳇말로 한탕 튀겨 먹기 위해 올리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음모론이라면 주가흐름이 비로소 그럴듯하게 설명된다.
초보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고 적지않은 음모(작전) 사례들이 적발되고 있는 동안이라면 그 설명력은 갈수록 굳건해진다.
음모론은 그러나 한 두 종목이 아닌 시장의 대세를 설명하고 주식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는 데는 전적으로 무용지물이되고 만다.
합리적 이해를 방해하기 때문에 차라리 백해무익이다.
종합주가지수가 왜 1,000포인트까지 올랐다가 500까지 되떨어지는지,외국인들은 왜 그렇게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지는지 따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기업,국제금융 등에 대한 적잖은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복잡성에 대한 이해'라고 부른다.
개탄스럽게도 음모와 음모론 모두가 횡행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저속한 정치투쟁이 계속되는 사회는 음모의 좋은 토양을 제공할 뿐더러 음모론적 세계관을 확대재생산해가게 마련이다.
"위기론이 위기를 부추기며,위기론을 과장되게 말하는 것은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거듭된 발언을 들어야 하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사례로 적시한 1989년의 일만 해도 그렇다.
3저 호황에 대한 정부의 관리 부실이 거대한 후유증을 쏟아냈던 과정,구체적으로는 단군 이래 처음 본다는 무역흑자가 부동산 시장을 폭발적인 상황으로 몰아갔던 일이며 1,000포인트까지 솟았던 주가급등의 후유증이며,격렬한 노사분규가 경제를 미궁으로 끌고갔던 저간의 경과를 도외시한다면 죽 끓듯 했던 당시의 위기론을 이해하기 어렵다.
금융실명제를 저지하기 위해 과도한 위기론이 유포됐고 그 결과 경제가 나빠졌다고 말한다면 이는 본말의 전도요,부분에 대한 과장이며,너무도 편리한 자기방어다.
더구나 당시에 '총체적 위기'라는 단어를 공식화한 것은 재계나 언론이 아니라 정부 자신이었다.
97년 위기 과정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한국경제신문만 하더라도 동남아 위기가 북상한다는 경고를 이미 97년 7월에 내보냈고 9월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외환 위기 가능성'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었다.
물론 당시에도 정부는 "언론이 위기를 부채질한다"며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 보면 언론의 위기론에 대응해 음모론의 역공을 퍼부어대는 것은 정책 실패를 면책하려는 경제관료들의 얄팍한 수법이 아닌가 새삼스런 의심을 갖게 된다.
요즘 논란을 빚고 있는 출자규제 등 소위 개혁과제들도 마찬가지다.
당국자들은 출자총액규제에 대한 재계의 반발을 과장된 위기론과 의도적으로 뒤섞어 놓고 있는 모양이지만,출자규제는 과잉투자 시절의 논리일 뿐 지금의 과소투자 상황에서는 철폐돼 마땅할 뿐이다.
상장기업 평균 부채비율이 99%로 낮아졌고,삼성전자는 이미 실질 부채가 제로에 들어서는 터에 출자규제라는 것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다른 주제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우스꽝스런 시대착오적 퀴즈를 앞에 놓고 '개혁에 대한 저항세력들의 음모'를 거론할 정도라면 경제관료들의 수준이 초보 투자자와도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인지….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