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서 재래시장 재개발사업이 시작된지 2년만에 환경 개선과 매출 향상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재래시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이 지지부진하거나 재개발을 잘못해 고치기 전보다 오히려 상황이 악화된 곳도 눈에 띈다. '서민경제'의 터전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도시환경 미화작업 필요성에서 추진된 재래시장 재개발사업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 마장동 축산시장의 변신 =지난 6일 오전 10시 서울 마장동 마장축산물 시장을 찾은 김지영씨(서울 성동구ㆍ주부ㆍ43)는 시장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1년여 만에 찾은 축산물 시장의 외관이 너무나 깨끗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시장 골목 전체에 덮인 반투명 천정. 더운 날이었음에도 햇빛을 가려줘 쇼핑 환경이 대폭 개선됐다. 제멋대로이던 간판들도 깨끗하게 정리돼 같은 높이에 나란히 붙어 있고, 축산물 시장 이곳 저곳에 널려 있던 지저분한 비닐 판매대도 자취를 감췄다. 김씨는 "가축의 핏자국이 길바닥에 흥건하고 악취가 코를 찌르는 곳으로 기억하던 축산물 시장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축산물 도매매장인 '황소들의 고향'을 운영하는 이민형 사장은 "환경개선 사업 이후 소매 손님이 30% 이상 늘었다"며 "이전까지만 해도 도매 비중이 80%, 소매 비중이 20% 정도였지만 지금은 소매 비중이 40%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 재래시장이 바뀌고 있다 =9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02년부터 현재까지 동대문구 전농동 전농로타리시장과 강북구 수유동 수유시장, 강북구 미아5동 숭인시장, 방학동 도깨비골목시장 등 모두 17곳이 환경개선 사업을 마쳤다. 현대식으로 바꾼 효과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양천구 신월1동의 월정로골목시장. 1백42명의 상인들이 장사하던 이곳은 작년 8월 현대적인 시장으로 바뀌면서 매출이 20% 가까이 늘었다. 지난 3일 새단장을 마친 서울 성동구 뚝도시장(뚝섬정수사업소 근처)도 성공사례로 꼽힌다. 1백70여명의 영세상인들이 장사를 하는 이곳은 작년까지만 해도 인근에 들어선 대형 할인매장 이마트에 밀려 '파리만 날리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손님이 몰리는 등 활기를 띠고 있다. ◆ 실패사례도 많아 =서울의 대표적 건어물시장인 중부시장은 재개발 실패 사례다. 중부시장은 작년부터 재래시장 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백70억원을 들여 쇼핑몰형 시장을 지어 최근 완공했으나 입점한 점포는 단 4곳뿐이다. 새로운 상인들을 유치해야 쇼핑몰 전체가 활성화되지만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던 기존 상인들조차 입주를 꺼리고 있다. 불경기로 장사가 되지 않자 입주 상인들이 '추가 비용을 내면서 모험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부시장 납세조합의 김창호 본부장은 "최근 완공한 쇼핑몰에는 입주업체가 4곳뿐이어서 건물유지비도 건지기 어렵다"며 "재래시장 면허를 반납하고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건물을 짓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10여개의 재래시장이 밀집해 있는 동대문 패션타운 재개발사업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상인과 건물주 등 관련 단체의 협의 지연과 정부와 서울시 등의 자금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 재개발 일정과 전망 =서울시에는 모두 3백12곳의 재래시장이 있다. 이 가운데 상반기에 환경개선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시장은 52곳이다. 서울시는 올 하반기 13곳을 추가로 지정하는 등 2006년까지 1백60곳을 현대식 시장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하지만 상인과 건물주, 지자체 간의 협상이 난항에 빠진 곳이 많아 서울시 계획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의류재래시장 전문가인 백제예술대 신용남 교수는 "지금까지의 재래시장 재개발이 지나치게 도심 환경미화에만 초점을 맞춰온 탓에 실패가 많았다"며 "시설 개선과 함께 재래시장들이 자생력을 기를 수 있는 조치들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부시장 관계자도 "농협이나 수협처럼 재래시장 상인들을 지원하는 기관을 두어 자금 융자, 교육 등 소프트웨어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형석ㆍ이태명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