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지 13일째 되는 날이다. 국민들은 초선 의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번 국회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김원기 국회의장은 최근 사석에서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김 의장은 느릿느릿한 어투로 말했으나 의지만은 강해 보였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언론들이 정치와 정치인 사랑운동을 전개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동안 정치인에게 쏟아진 국민의 눈총이 얼마나 매서웠으면 김 의장이 정치사랑운동을 얘기했겠는가. 이 시점에서 과거 정치행태를 들먹이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을 전적으로 정치인들에게만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17대 국회 모습 속에서 과거의 '못된 관행'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열린우리당 의원 82명이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왼팔' 안희정씨의 구명을 위해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 7일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안씨에 대해 중형을 선고했다. 법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은 탄원서 서명에 신중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날 국회 개원식 모습도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설 때 한나라당 의원 20여명은 일어서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의 연설 중간중간에 박수치는 동료의원에게 "박수는 왜 치냐"고 소리쳤고,노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얘기를 할 때는 냉소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여야 정치인은 이러고도 '사랑받는 정치'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치인들이 존경받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남녀간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하지만,국민의 '정치사랑'에는 분명한 전제가 있고 조건이 따른다. 우선 그토록 우리 사회를 옭아매온 지역감정을 떨쳐버려야 한다. 이번 6·5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일부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해주기에는 너무 시대에 뒤진 모습이다. 국민들은 의원의 고성이나 튀는 복장을 보고 의정활동을 평가하지 않는다. 복지 향상과 경제·사회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평가의 잣대로 삼을 뿐이다. 항공기 앞좌석은 '의원님'자리라는 식으로 특권을 맘껏 누리면서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노동운동가 출신이기 때문에 양복을 입지 않아야 하고,국회의원의 차는 검은 색이어야 한다는 '경색된 사고'는 버려야 한다. 또 국민의 대표라면 이익단체로부터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할 소리가 있으면 해야 한다. 과격한 노동운동을 준엄하게 꾸짖고 국가 장래를 위해 필요한 일은 "이번만 하고 말겠다"는 각오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연구하고 공부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보고 싶다. 국정감사장에서 보좌관이 써준 질문지나 읽고 공무원이나 민원인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지난 시절의 '정치판'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볼 때 며칠도 안돼 국민들은 실망할 것이다.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게 될지 모른다. 17대 국회 '구성원'들은 다시한번 새로운 정치인상을 마음 속에 그려보기 바란다. 유권자들은 수시로 실망을 안겨주는 정치세력에 표를 줄리 만무하다. 국민이 바라는 국회상은 '싸움하는 국회'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다. 여기에 정치권이 갈망하는 차기 집권에 대한 '답'이 있다면 지나친 것일까. yg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