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산하 기관장들은 '좌불안석'이다. 다름 아닌 자리 때문이다. 이들을 불안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름 아닌 인사 실세인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의 발언이었다. 지난달 말 정찬용 수석이 공개석상에서 "어지간히 하신 분들은 스스로 거취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압박했다. 이에 따라 올해와 내년 상반기 중 임기가 끝나는 일부 기관장들은 자신이 '어지간히 하신 분'의 대열에 끼지 않았는지 파악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릴 정도다. 여기에 검찰까지 공기업에 칼을 들이대겠다고 발표, 기관장들의 수심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 임기 1년 이내 기관장 30여명 내년 6월까지 임기가 1년이 채 안 남은 정부투자기관(공기업)과 정부산하기관의 사장들만 해도 30여명에 이른다. 13개 정부투자기관과 88개 산하기관의 30%가 잠정적인 인사대상으로 올라와 있는 상태다. 13개 정부투자기관 중에는 김진호 토지공사 사장, 김진배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박춘택 광업진흥공사 등이 올해 임기가 끝난다. 정동윤 지역난방공사 사장도 내년 6월 임기가 만료돼 1년이 채 남지 않았고 이억수 석유공사 사장은 내년 8월이 임기다. 88개 산하기관 중 올해 임기가 끝나는 기관장은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 김영찬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최규학 소비자보호원 원장 등 7명 정도다. 그러나 내년에는 연원영 자산관리공사 사장, 이연택 대학체육회 회장, 은영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등 20여명의 임기가 끝나게 된다. ◆ 임기 존중하지만 문제 있으면 교체 일단 문제가 없는 기관장들의 임기를 보장한다는게 청와대의 구상이다. 정 수석은 "임기는 사회적 약속인 만큼 꼭 존중해야 한다는게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언급해 이를 뒷받침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 과거의 관례대로 공기업 사장 및 산하기관장들로부터 일괄사표를 받지 않은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민·형사상 위법이나 경영상 문제가 없는 기관장들은 대부분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란게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국정쇄신 차원에서 공기업ㆍ산하기관장들에 대한 대대적 물갈이 인사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는 상태다. 정 수석의 "현저하게 경영실적이 나쁘거나 통솔이 안돼 조직이 소란스러운 곳 등의 장은 스스로 그만두는게 옳다"는 발언이 이같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 청와대는 당초 지난 봄을 전후해 공기업 사장 및 산하기관장에 대한 대대적 인사를 준비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정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총리 인준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일부 개각이 이뤄진 뒤 대대적인 공기업 물갈이 인사가 단행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이미 교체 대상 기관장들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수집해 놓고 후임을 찾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조직관리 부실, 개인비리에 연루된 기관장들은 대부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교체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 검찰 수사도 변수 이처럼 청와대의 압박 속에 최근 송광수 검찰총장의 발언은 기관장들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고 있다. 송 총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를 자청, 향후 중점 수사 대상의 1순위로 '공기업 비리'를 꼽았다. 송 총장은 특히 "공기업 비리에 대한 자료가 상당히 확보돼 있다"며 검찰이 이미 수사준비가 돼 있음을 내비쳤다. 이같은 방침은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의 공적자금 관리체계에 대한 감사 결과가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지만 검찰이 이미 청와대 등과 조율을 마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즉 경제회생과 함께 공직사회 개혁을 집권 2기 슬로건으로 내건 청와대가 이미 상당한 정보를 검찰과 공유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직접 비리에 연루되지 않은 기관장들도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조직관리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으로 점쳐져 공기업 인사폭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